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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대첩기념공원이 있기까지

해질녘 노을이 물든 바닷가에 승전고(勝戰鼓)가 요란히 울려 퍼지고 백성들의 춤사위가 흥겹기만 하다.

왜구의 침입으로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의 운명을 뒤바꾼 사건이자 이후 세계 해전사에 유래 없는 전승을 기록한 이순신 장군의 첫 승전인 옥포대첩(玉浦大捷)의 1592년 5월 7일 그날의 옥포만 모습이다.

그로부터 365년 뒤인 1957년 6월12일(음력 5월 7일) 이순신 장군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눴던 백성의 후손들은 아주리 당등산 거북산재 정상에 옛 영광을 기리는 ‘옥포대첩기념탑’을 세웠다.

탑신 속엔 당시 지역 초등학생 4학년 이상 학생들이 ‘남북통일, 계승 충무공 정신’이란 글을 모아 금속함 안에 넣었고 매년 기념축제를 열었다. 16일 열리는 옥포대첩기념제전의 시초가 된다.

한국전쟁이 직후 녹록치 않은 형편에도 십시일반 힘을 모았던 거제도민(巨濟島民)의 숭고한 얼이 담긴 이 탑은 1973년 10월 11일 옥포조선소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부득이 옮겨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1975년 탑을 옮긴 장소는 대우조선소 내 2700여 평 남짓한 부지였다. 그러나 조선소는 보안관계로 일반 시민들이 탑을 찾기도 힘들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거제도민들은 다시 한 번 기념탑을 옮겨 세우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옥포대첩기념탑을 옮긴다는 결정에 따라 각 지역에서 기념탑 유치를 위해 열을 올렸고 적잖은 지역 갈등도 있었다.

이후 탑을 옮기기 위해 거제도민들은 옥포대승첩 성역화사업 및 충의사 건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끊임 없이 정부에 도움을 달라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정권교체 등 정치적 상황변화로 무산되는 일이 20년 가까이 반복됐다.

결국 현재 옥포대첩공원이 세워진 부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던 김우중 회장과 주민들의 기증으로 1996년 6월 22일 마침내 현재의 옥포대첩기념공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57년 거제도민의 힘으로 세워진 옥포대첩기념비는 여전히 1975년 탑을 옮긴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홀로 서 있다. 애초 이 기념탑을 옮기기 위해 만들기로 한 기념공원엔 이미 새로운 기념탑이 만들어져서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거제도민의 기부와 노력 없이는 결코 만들어 질 수 없었던 옥포대첩공원의 주인은 온전히 거제도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에게 사랑받고, 시민이 찾고 싶은 공원은 시민이 주민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옥포대첩공원은 시민의 사랑을 받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선조들의 얼을 기리는 일에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가야하는 고생 정도야 달게 받겠지만 스스로 기부하고 노력해 지어진 공원을 이용하는 일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곳을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탓이다. 시민의 안정을 위한 휴식 공간 조성이라는 당시 목적도 무색하게 됐다. 완공 20년 여 년이 지난 현재 특별한 행사가 없는 날은 시민 방문이 뜸하기 때문이다.

옥포대첩 425주년 기념 제55회 옥포대첩기념제전에 앞서, 행사장소인 옥포대첩기념공원이 만들어진 의미와 과정을 되새겨본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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