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머리를 닮았다는 우두봉에서 정유년(丁酉年)의 첫 일출을 맞이하러 갔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어둠이 짙어 제법 컴컴한 이른 시간에 무이사에서 출발하였다. 차는 사적지인 폐왕성(廢王城)의 주차장에 세워 두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갔다. 남은 별빛에 의지해야만 하는 새벽 산행은 비록 짧았지만,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제법 힘이 들었다. 신년 해돋이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즐겁게 덕담을 나누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해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해가 떴다.

해는 매일 떠오르고 있는데, 우리들은 왜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해를 유독 기다리는 것일까? 시간은 변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표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시간은 오로지 현재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오늘>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첫날> 또는 <새날>이 되고, <올해>라는 것도 또한 <새해> 혹은 <첫해>가 된다. 매순간이 새해 첫날이 되는 것인데도, 각자는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그 의미를 갖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해(年)가 바뀐다는 것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고, 그래서 삶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아도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고 바뀌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게 되어 있다.

어느 유행가 가사에서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참으로 멋있게 표현하였다. 우리의 삶이 조심스럽게 익어갈 때에,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단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어른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은 적게 하고, 하고 싶지 않는 것은 많이 하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거나 유리한 것만 쫓아서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어 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는 것은 안하려고 한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거나 불리한 것은 애써 하지 않는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은 거부하거나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들은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만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싫어하거나 하고 싶지 않는 일들이 더 많이 주어진다.
그런데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거나, 먹고 싶은 것만 먹는 사람이 복을 누리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복은 누린 만큼 복을 까먹기도 한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행함으로서 복을 짓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하여 참아 내고,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하여 참아 내는 것이다. 우리는 참을 자유도 있고, 참지 않을 자유도 갖고 있다.

법성게(法性偈)에서는 ‘불수자성 수연성(不收自性 隨緣成)’을 가르친다. 참을 자유와 참지 않을 자유는 자신의 의지와 자성(自性)에 따른 문제가 아니고, 인연에 따라서 이루어 가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여야할 때는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말아야할 때는 안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여야할 때는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말아야할 때는 안하는 것이다. 무조건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실체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의 업식(業識)과 싸워서 이겨야만 한다.

참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바세계에서는 인욕(忍辱)을 통해서 지혜를 증득하게 한다. 아상과 아집과 망념으로 자신을 내세울 때, ‘참는 것’과 ‘참지 못하는 것’이 생겨난다. 그런 상태에서 참으면 내부의 독(毒)이 되고, 참지 않으면 외부의 독(毒)이 된다. 인욕은 참아야만 하는 것이라면, 인욕바라밀은 참을게 없는 것을 뜻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둘이 아니다.’라는 불이법(不二法)을 안다면, 참을 것이 본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도리를 알게 되면 일체를 긍정하게 되고, 공감을 할 수가 있다. 겸손과 존중이 나타나게 되며, 비로소 어른이 되고, 인욕선인(忍辱仙人)이 되는 것이다.

새해의 둥근 해는 모두가 어른이 되라고 찬란하게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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