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예의염치(禮義廉恥)옥문석 /한국시인협회 회원

어머니가 늘 들려주던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하는기라." 어릴적 잘못을 저지르고 집에 오면 "야이 자석아 염치가 있거라"라는 말이 꼭 따라 붙었습니다. 당시에는 뜻도 모른 채 눈치로 사람 구실하라는 말로 새겨 듣곤 했습니다.

우리 사회사는 망국에서 식민시대를 관통하면서 누대로 전래되던 삶의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모른 채 격랑의 바다로 내몰렸습니다. 식민의 아픔이 치유되기도 전에 해방의 공간에서 가치관의 혼동으로 심한 멀미를 해야 했습니다.

사회주의는 식자층의 전유물처럼 되어 벌어지던 일, 이를 바탕으로 박헌영이 김삼룡, 이주하 등과 함께 공산당을 재건하여 당시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던 일, 6.25 전쟁이 일어나 3년여 동안 민족의 분열과 대립의 참화를 겪었습니다.

그러잖아도 곤궁(困窮)한 삶은 더욱 피폐(被弊)했습니다. 후(厚)하고 살갑던 이웃간의 정리(貞理)마저 쇠잔해 갔던 세월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닥친 4.19는 억눌렸던 욕구가 정돈되지 않은 채 분출되었고, 민주정부는 방향타(方向舵)를 놓은 채 갈팡질팡하다가 5.16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당시 정치꾼들의 욕심이 부른 결과였습니다.

이런 혼질(昏窒)의 세월에 구토(嘔吐)를 하지 않고 용케도 버텨온 우리 민족입니다. 5.16 이후 잘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궁핍을 밀치면서 성장의 과속 페달을 밟았죠.
이 과정에서 과정이 생략되는 새로운 사회현상을 목도(目睹)하게 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됩니다. 무조건 해보라는 "이봐 해봤어?(정주영)“라는 말이 시대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가 되기도 헀습니다.

결과는 기본이 상실된 사회 현상이란 것입니다.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문제는 소멸되고 오직 돈이 최고인 천민자본 사회가 발아(發芽) 되었던 것입니다. 소중히 간직하고 체화되었던 예의염치는 숨어들고 말았습니다.

레비스트로스(Ciaude Levi Strauss)는 "인류가 조화로운 자연에서 분리되면서 건강함을 잃고 불균형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과속 성장이 부른 불균형이 상금(尙今)도 병폐가 되고 있습니다. 양잿물도 돈이 되면 마신다는 말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궁핍을 희화화(戱畵化)한 시대의 풍경이라고 할까요?

거제는 조선공업이 들어서면서 땅값이 전국에서 제일 많이 오른 곳일 겁니다. 못쓰는 자투리땅도 돈이 된다고 형제간 끼리 재산싸움이 가장 많은 곳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장자에 오상아(吾喪我)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초상 치른다'는 뜻이랍니다.(김정탁 풀이: 문화일보 9월 30일 24면) 여기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배움이 훌륭해도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선 내가 나를 초상 치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죠.
지금의 시대상은 아(娥)에 대한 성찰(省察)이 없습니다.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이 '자살론'에서 차용한 아노미 현상(혼돈과 무규제 상태)입니다.

사회가 병이 들어도 너무 심하게 들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모든 유전자는 개체를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자손을 가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이타적(利他的)이란 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얼마나 이타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 일어나는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배운자들, 식자들의 횡포가 극에 달한 현상입니다. 특히 법조계 출신들의 행태가 목불인견(目不忍見)입니다. 어느 인사는 동아일보(11월 19일) 지면을 장식하던데 이게 무엇인지요. 참담함을 느낍니다.

갑질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짓이 체화되어 은퇴 후에도 탈각(脫殼)이 안되나 봅니다. 여기에는 교육공무원, 일반공무원, 군 출신자들로 이타적이라기 보다 이기적이라는 함의가 있습니다.
버릇이란 게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문화와 윤리는 그 사회 특유의 문화윤리가 내재한 사람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문화는 문화인을, 윤리는 윤리인을 배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송 복: 특혜와 책임) 이 보편적 가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투영되어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식자우환(識子愚患)이란 말이 있습니다. 행정부나 국회나 군이나 검찰의 세계에서 범법자가 속출하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예의염치인데 이걸 깜빡했는지, 아예 무시해 버렸는지 알 수가 없지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강단에서 가르쳐야 할 학자들이 청치판이나 권력주변에 붙어 곡학아세(穀學阿世)하는 이 염량세태(炎凉世態)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노블레스 오블리주, 고위직군 가운데 행정과 입법 분야에 하나같이 범법자가 많은 것은 무슨 경우인가요. 의무를 다하지 않은 특권, 왠지 씁쓸합니다. 이 직군에서 거슬러 올라 가면 신라의 관창, 우리시대에 있어서는 유일한 박사가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알게 모르게 많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해외 사례도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영국 왕실과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유명합니다. 마오의 아들 전사나 밴프리트 장군 아들이 6.25때 참전, 전사한 일. 우리나라는 고위층의 자녀일수록 군 기피자가 많습니다. 청문회란 걸 보면 군 미필자는 왜 그리 많은지. 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나라 경영에 참여하는 파렴치한(破廉恥漢)들이 왜 그리 많은지. 행정, 입법, 사법 똑같더군요. 법을 재단할 사람들이 이런 유형인데 인민들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이 천박한 행태 앞에서도 우리는 문화인으로 윤리인으로 행동하는 상류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해도 문화를 손상시키거나 저하시키지 않고 윤리에서 일탈하지 않고 숨어있는 예의염치를 찾아내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혼돈의 한가운데 화두는 돈입니다. 학자가 오랏줄 차고 호송차 타고 법원 오락가락하는 것도 돈 때문입니다. 법조인의 일탈도 돈입니다. 국회의원들은 제손으로 제월급 올리는 블랙 코미디를 생산하는 광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예의염치를 알면 부끄러워서 못할텐데 시정잡배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국익이 우선인데 사익과 이데올로기에 파묻혀서. 예의염치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거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