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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령군(眞靈君)의 역사적 현재성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오후 늦은 시간에 처조카의 결혼식이 있는 주말이다. 편의점에서 주말 신문 세 종류를 구입해 아침부터 신문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수 신문 하나와 진보 신문 둘. 신문마다 최순실 사태로 도배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정치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모든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방증한다. 까도 까도 벗겨져 나올 양파와 같은 이야기가 앞으로 무궁하게 펼쳐져 모든 국민의 눈과 귀를 의심스럽게 할 모양새다.

최순실은 박근혜 정권의 역린(逆鱗 :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았다. 용의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면, 이제까진 용에 의해 용서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용이 치명상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몰락의 용트림은 말기적 신비주의와 함께 역사적으로 있어 왔다.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고려 말의 요승 신돈과 제정러시아 망국사의 끝자락을 장식한 사이비 교주 라스푸틴의 역사적인 사례를 들고는 한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은 이렇게 저물어 가는구나 하는 쓸쓸한 감회와 함께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순실의 전례는 신돈과 라스푸틴의 경우라기보다 19세기 조선말의 진령군이라고 할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더 적절한 역사적인 비유의 대상은 영락없이 진령군이다. 최근에 외신에서도 최순실을 가리켜 ‘샤먼처럼 불가사의한(mysterious) 여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때 국정을 농단한 여자 진령군은 도대체 누군가.
그는 천민 출신의 무녀이다. 삼국지의 관우를 신주로 모신 강신무다. 원초적인 신비체험인 신내림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신비적인 사술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임오군란 직후에 도피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명성황후에게 만남을 청한다.
내가 여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느냐?
네, 중전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몸주님(관우)이 점지해 주셨고, 찾아가 뵈라고 했습니다.
내 다시 궁중으로 되돌아갈 것 같으냐?
이 물음에 진령군은 돌아갈 날짜까지 예언하였고, 이 예언은 흥선대원군이 청나라 군인들에게 납치되는 정치적인 변수가 생김으로써 그대로 적중했다. 다시 권좌에 복귀한 고종-명성황후 부부는 진령군을 지극히 신임하게 이른다. 여자에게 주지 않은 군호(君號)까지 주었다.

진령군(眞靈君).
사람들은 군(君)을 두고 왕자의 격으로 높인다는 뜻으로 대체로 알고 있다.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한다. 과문한 탓에 정확히 잘 알 수 없으나, 이 군은 벼슬이 없는 자에게 부여하는 공신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진령군은 대체로 이런 뜻이 된다. 진짜 신령스러운 공신……. 비공식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진령군이란 군호는 명성황후가 경복궁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바람직한 예언을 적중시킨 공을 세웠다는 점에서 부여받은 호칭인 게다. 이때부터 10여 간에 걸쳐 진령군의 국정농단은 이어진다. 1880년대는 그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왔다 갔다 하던 시대였다. 그의 주변에는 잇속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 가운데는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깡패가 생겨나고, 뭔가를 청탁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재물이 날로 산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진령군의 약발은 점점 떨어져 가고, 친일 개화파는 마침내 그의 재산을 환수해 알거지로 만들어 버렸다. 을미사변이 일어나 명성황후가 시해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그에게도 전해졌다. 정확한 정보인가 하는 여부는 알 수 없어도,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서울의 산속 오두막집에 칩거하고 있던 그는 상심을 하다가 명성황후의 뒤를 따라 죽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낱 무녀일망정 모시던 사람에게 최소한의 신의는 지켰다고 보인다.

최순실 역시 자신이 모시던 사람이 심각한 위기의 상황에 몰려 있다. 모시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를 생각한다면, 빨리 귀국하여 분노한 국민들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한다. 속이지도 말고, 감추지도 말고, 줄이지도 말고,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용서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진령군이 120년 만에 평범한 아녀자로 다시 태어나 국정을 농단했다니 참으로 놀랍다. 최순실은 박근혜 정권의 역린이요, 진령군의 역사적 현재성이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가 망상의 인간관계에 빠지면, 망조에 접어든다는 사실을 준엄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현안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가 시대의 죄인이 될 것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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