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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을 누리고 계십니까?김한식 /거제호산나교회 담임목사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해서, 가정적인 불화, 육신의 질병, 직장생활, 인간관계 등 우리가 다 표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하여 하루라도 맘 편할 날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평강이다. 여러분들에게 평강이 있는가?

평강이란 말의 성경적 언어는 샬롬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만날 때마다 샬롬하면서 인사를 한다. 인사말은 대체로 그 시대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시금석이다. 그래서 옛날에 한국 사람들의 인사가 ‘진지 드셨습니까?’였다. 우리 조상들은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식사를 했는지를 묻는 것이 인사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영국 사람들은 기후가 너무나 안 좋아서 항상 인사가 일기와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인사말이 굿모닝 혹은 굿 이브닝이다. 유대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그들은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날 때 마다 샬롬이라는 인사말을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평강이 있는가?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세상이 말하는 평강과는 서로 그 내용이 다르다.

세상이 말하는 평강은 그저 싸움이나 다툼이 없고, 모든 것이 풍부하며, 편안한 상태를 평강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이런 차원을 넘어 원수지간이었던 자들이 서로 화해를 하고, 돌아서서 부둥켜안는 상태를 평강이라 한다. 그러므로 평강이란 말의 성경적 의미는 분리가 있은 뒤에 오는 연합 그것을 평강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런 평강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가?

이 평강은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아담 이후로 우리는 죄인으로서 하나님과 원수관계로 살아왔다. 그때 우리에겐 평강이 없었고, 수고와 고통뿐인 저주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저주받아 죽여 버려야 할 그 죄인들이 십자가의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의 연합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원수였던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서로 돌아서서 부둥켜안고 화해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 평강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그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것만 분명하게 알고 믿기만 하면 이제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그 풍성한 평강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셨으며, 뿐만 아니라 율법이 더 이상 죄로 인하여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도록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요구사항들 까지도 완전하게 충족시켜 드렸다. 그 결과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정죄가 사라졌고, 용서와 은혜만이 주어졌다. 우리가 이 사랑만 확인하면 그때부터 자기 자신을 의지하려고 하는 인본주의가 철저하게 무너지게 되어 있고, 그래서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살게 된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 주위에는 거짓 평강을 외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사람들조차 이 거짓 평강을 외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옳지 않는 곳으로 미혹하고 있다. 알미니안 주의를 근간으로 한 모든 종교가 다 그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율법을 지키고 인간의 행위를 보태면, 죄인인 인간들에게도 하나님의 평강이 올 수 있다는 가르침, 그 것은 이단적 사설이다.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고, 소원이 이루어지며,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이 만사형통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병도 안 걸리는 그런 요술램프를 쥔 알라딘 같은 신앙을 외치는 자들이 널리고 널려있다.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그런 평강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물질적, 공간적 편이들이 내게 주어져 있지 않을 때, 그 때도 사라지지 않는 그 어떤 하늘의 것을 성경은 ‘평강’이라고 부른다. 예수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다르다. 세상은 모든 것이 풍부하고, 아무 일이 없는 조용한 상태를 평강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그런 평강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으면 분쟁이 생길 수 있고 싸움이 생길 수 있다. 예수님 때문에 친한 친구들이 떠나갈 수 있고, 가족 사이에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당하면서도 예수로 말미암아 그 마음은 기쁘고 잔잔하기만 한 것을 성경이 말하는 평강이라 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동시에 받아들이지도 않는 평강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주는 평강은 전부 물질적, 공간적, 제한적 질료로 구성되어 있는 평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으로 주어지는 평강은 참 평강이 아니다. 참 평강은 이 세상의 것을 질료로 하는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그 근간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직 선물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주위의 환경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침투해 들어와서 내 마음에 새겨버리는 그 평강, 그 평강으로 인해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오히려 그 하나님을 향해 감사해 하는 그 평강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다. 세상의 일이 잘 되어서 주어지는 기쁨은 편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은 절대 흉내 낼 수도 없는 그 것이 바로 평안, 평강, 평화인 것이다. 이런 평강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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