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몇 년 전부터 정원에 심어둔 유실수가 열매를 달기 시작하였다.
복숭아, 포도, 사과, 배, 자두, 모과, 무화과...... . 제법 철에 따라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골고루 심어 시기에 따라 열매가 맺히는 기쁨과 작은 열매가 몸집을 불러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드디어 복숭아가 그 뽀얀 뺨에 분칠을 하고 단맛을 더해 갈 때, 우리보다 더 복숭아가 익기를 기다린 녀석이 있었으니 바로 까마귀와 까치다. 이 녀석들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지만 한 마리 두 마리가 아니고 떼를 지어 날아와 여기저기를 쫒아가며 주인보다 먼저 단맛을 점검하고 다녔다. 아직 다 익으려면 보름도 더 걸려야 할 텐데 그사이를 못 참고 날아와
여기 저기 흠집을 내어 한 개도 성한 것을 두지 않고 난장판을 부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당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주인보다 더 잘 파악하여 여기저기를 쪼아보고 단맛이 더한 곳을 어김없이 훔쳐 먹는다. 차라리 한두 개를 택해 저 짓을 한다면 그래도 눈감아 줄만한데, 어떻게 찾아내는지 나뭇가지 아래 매달려 우리의 눈엔 잘 띄지도 않는 숨어있는 열매까지 낱낱이 찾아 요절을 내 놓는 통에 기가 찰 노릇이다.
일요일 낮, 모든 일을 접어놓고 추석맞이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창문도 닦고, 부엌살림도 깔끔을 부려가며 신바람 나게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당에서 까치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마당에 첫 열매를 매단 배나무 생각이 났다. 창문을 열고 배나무를 쳐다보니 예상했던 대로 까치 두 마리가 배나무에 앉아 열매를 쪼고 있었다. 소리를 질러도 겁도 없이 그대로 앉아서 하던 일을 계속하기에 얼른 1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여니 까치 부부가 배나무 가지에 배달려 달려있는 배의 꼭지를 부리로 콕콕 쪼아 마당으로 배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렇게 먹지 않고 부리로 쫒아 마당으로 떨어뜨리나 하고 의아해 하다가 그 영악성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마당에는 배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이놈들이 이미 앞 배나무에서 매달린 배를 부리로 쪼아 마당엔 여러 개의 배가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떨어진 배를 이제 마악 깨어난 새끼 까치들이 부모가 떨어뜨려 놓은 배를 사이좋게 쪼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어린 새끼 까치는 나무에 매달릴 수가 없었고, 달린 열매를 부리로 쪼아 먹을 수도 없으니 부모 까치가 줄기를 쪼아 열매를 마당으로 던져주고 새끼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은 다음 두 번째 나무에 앉아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혼을 내려고 맨발로 마당으로 내려섰던 나는 주춤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는 행위는 혼을 낼만한 일이지만 새끼를 위하는 그 맘에 가슴 한켠이 찡해졌다. 어떻게 저들을 짐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끄러미 그 관경을 구경하고 섰는데 어미도 새끼도 주인의 방문을 눈치 채지 못하고 각자 자기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두 번째 나무에서 배 한 개가 뚝 떨어졌다. 첫 번째 나무에서 떨어진 배를 쫒아먹고 있던 아기 까치가 두 번 째 나무로 옮겨왔다. 그러자 다음 아기 까치가 두 번째 나무에서 떨어진 배를 찾아 자리를 옮겼다. 조금 있다가 여섯 마리의 아기 까치들이 모두 두 번째 나무 밑으로 이동해 왔다. 그리고 다시 부모님이 떨어뜨려 준 배를 맛있게 쪼아 먹고 있었다.
첫 번째 나무 밑에 떨어진 배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어떻게 어린 것들이 저렇게 야무지게 파 먹었을까? 까치 새끼들이 먹고 간 배는 한 점의 살점도 남겨놓지 않고 요리조리 다 파먹고 배 깍지만 댕그랗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두 번째 나무에서 부모가 떨어뜨려주는 열매를 다시 맛있게 파먹고 있었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까치 부부는 배 꼭지를 쪼아 배를 떨어뜨려만 주었지 그들이 배를 먹는 것을 보지 못했다. 까치 부부는 새끼들을 위하여 배를 떨어뜨리는 일만 했지 자신의 배는 채우지 않았다.
새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어리석지 않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중에서 머리가 좋은 동물에 속한다. 특히 우리나라 텃새인 까마귀, 까치는 ‘날개 달린 영장류’’라고 할 정도로 영리하다. 어느 조류학자가 까치를 연구하기 위해 알이 있는 둥지에 올라가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후 이 조류학자가 둥지 가까이 가면 까치가 날아와 조류학자를 위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까치가 사람을 구별할 수 있나 알아보기 위해 조류학자와 비슷한 키에 비슷한 옷을 입은 다른 사람하고 같이 둥지 곁을 갔더니 정확하게 조류학자 머리를 날개로 때렸다고 한다. 이를 보면 까치도 사람을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또 까치들은 서로 협동할 줄 아는 동물이다.
어느 날 까치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시끄러워 쳐다보니 둥지 가까이 온 매를 서로 협동하여 쫓아내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새들의 지능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5-7세 수준의 지능이라고 한다. 7세면 유치원 수준인데, 유치원 원아들은 자기의 의사를 전달할 줄도 알고, 사리 분별도 할 줄 안다. 더구나 유치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집으로 돌아가 바르게 전달할 줄도 아는 나이이다. 까치의 지능이 7세 정도라니 그러니 단맛을 찾을 줄 알고, 자식을 위할 줄 알고, 사람이 보는 곳은 절대 파먹지 않고 뒷부분만 야금야금 파먹어 멀쩡한 과일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뒷통수를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제 농사는 풀과의 전쟁에다가 새와의 머리싸움이 되었다. 수확 시기에 찾아와 제일 먼저 맛있는 과일을 쪼아 먹는 새, 어느 과일이 언제 쯤 익을 것이라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는 새들이 무섭다. 까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풀숲에 숨겨둔 참외를 몰래 가져가 버렸다는 어느 아줌마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사건을 통하여 까마귀가 숨겨놓은 참외를 훔쳐가는 그 장면까지가 그림으로 그려졌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새와의 전쟁을 위하여 몇 단계의 대책을 세워보지만 효과가 없다고 한다. 반짝이를 달아보고, 종을 매달아 소리가 나게 해 보아도 눈도 깜빡 안 한다고 한다. 더구나 허수아비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기능도 잃은지도 오래되었다 하니 어쩌다 세상은 새와 인간의 두되 싸움이 되었을까?˙
릴케는 지금의 이 계절을 못다 익은 과일이 단맛을 더 해가는 계절이라고 노래했다. 게으름을 부리다 늦게 익어가는 과일들은 가을의 그 눈시린 햇빛을 받아 단맛을 더해 가라고 하나님이 마지막 햇살을 내려준다고 했다. 그런데 릴케 시절의 새들은 못다 익은 과일을 다 익도록 기다려 주는 미덕이 있었을까?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피해자 사망, 가해자 풀려났다? 검찰 입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