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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본업(本業)과 사회적인 공업(共業)하담스님 /무이사 주지

꼬박 밤을 지새웠다. 조용하고 공기 맑은 산사(山寺)에서 새벽을 맞이하였는데도,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밝은 아침의 해를 기다리는 새벽에서 상큼한 희망을 느껴 보고 싶었지만, 우리의 삶을 여전히 절망하게 만드는 시대 상황을 보면서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온갖 문제(미세 먼지, 묻지마 범죄, 자살, 질병, 경제 불안 등)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보다는 자꾸만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것이 그 답(答)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지 못했었고, 우리 사회가 많은 절망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각 개인의 업(業)이고, 우리 사회의 공업(共業)인 것이다. 그에 따른 과보(果報)로 우리들은 힘들고 암울한 세상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뿌린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 우주의 질서이며, 바른 이치인 것이다. 내 자신도 작년 년 말 즈음에는 한참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 때 만났던, 어떤 수행자께서 힘들어 하는 나에게 ‘환경이 곧 나다.’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과거에 내가 행하였던 모든 것(마음, 생각, 행동 등)들이 지금의 내가 맞이하는 주변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자기가 경험하는 세상은 자기가 만들고, 그 환경 속에 자신이 그렇게 놓여진다. 자신이 그렇게 환경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고 주어지는 환경은 ‘나’와 같은 한 모습으로의 우주인 것이다. 이 우주는 나의 반영(反影)인 것이다. 이 우주는 나의 책임으로 이루어지고 결정된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우주를 만들고 우주가 되는 것이다. 인연과(因緣果)는 우주의 법칙이고, 불변의 진리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인간이 가지는 자유의지에 의해서 능동적인 행위를 하여 생긴 과거의 본업(本業)을 인(因)이라 하고, 사회적 차원(자연 환경, 시대 상황, 사회 환경 등)에서 행해지는 공업(共業)을 연(緣)이라고 한다. 우리의 환경과 세상인 우주를 과(果)라고 한다.

인(因)은 반드시 연(緣)을 동반하고, 상응(相應)하여 과보(果報) 나타난다. 인연에 따른 업(業)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에 대한 무한 책임 그리고 권리와 의무에 대한 자율적인 판단과 선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행위의 의도와 동기가 중요하다. 업(業)의 과보(果報)는 그 누구라도 피할 수가 없고 그 어떤 방법으로도 면할 수가 없기 때문에, 평등하고 합리적인 이치이다.

선인선과(善因善果)이고, 악인악과(惡因惡果)이다. 인과응보를 말하며,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을 준다. 못된 이기심으로 악행(惡行)을 하는 자는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자비로운 이타심으로 선행(善行)을 하는 자는 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치이지만, 그 이치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을 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사용하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인간(人間)이라는 단어에서 ‘간(間)’을 ‘사이 간’이라고 한다.

‘이것’과 ‘저것’이 마주 대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표현된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뜻하고, 공간은 ‘이곳’과 ‘저곳’을 말하며, 인간은 사람인 ‘너’와 ‘나’를 말한다. 상대적이면서도 공존(共存)을 전제로 역할과 작용이 일어나는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사이’가 좋은 사회는 안정된 평화와 즐거운 행복이 생기고, ‘사이’가 나쁜 사회는 불안한 전쟁과 고통스러운 불행이 생기는 것을 인류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개개인의 특징이 정말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사회는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 질서를 요구하였고, ‘선(善)’과 ‘악(惡)’을 그 질서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사이’를 좋게 만드는 것을 ‘선(善)’으로 하고, ‘사이’를 나쁘게 만드는 것을 ‘악(惡)’으로 규정하였다. ‘권선(勸善)’과 ‘징악(懲惡)’을 강조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해 왔었다.

그러나 지식이 넘쳐나고 물질문명이 발달된 현세(現世)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행복하기보다는, 의외로 고통스러운 불행의 문제가 많이 주어진다. 그런 불행의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여 당황하거나 불안해한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속한 세상의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깨달으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중요시 하고, 자아중심적인 세계관과 인간 관계법으로 만든 자신이 쌓은 업(業)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망상으로 인격이 분열되는 자신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의 가치를 ‘이해득실(利害得失)’을 우선하기보다는 ‘선악(善惡)’을 우선하는 가치관으로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그리하면 개인은 인격이 성숙해지고, 사회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공동선(共同善)은 개인이 선(善)한 삶을 통하여 사회가 선(善)해지는 세상이 됨을 말한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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