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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도들의 죄 때문에 진노하실까?김한식 /거제호산나교회 담임목사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사는 딸집에 잠시 머물고 있다.
내 속에 흐르는 피가 한국사람 피라서 그런지 관심은 온통 한국에 가 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들은 한결같이 나를 슬프게 하고 우울한 소식들만 들려온다. 어째서 내 나라는 이렇게 사건 사고가 많은가?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두 번째나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고 엄청난 교세를 자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혹시 이런 사건 사고를 당한 기독교인들 가운데 잘못된 믿음으로 고난 받는 성도들이 있을까 싶어 몇 자 위로의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가운데 가장 오해하기 쉬운 지식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죄에 대해서 치명적인 질병과 사고와 비극적인 사건들로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이다. 흔히 우리가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되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하고 생각한다.

실재로 본인이 젊었을 때 그런 잘못된 생각으로 내 자신을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나는 머리가 굉장히 아팠다. 비가 오면 비 때문에 아팠고 햇빛이 나면 햇빛 때문에 아팠다. 심할 때는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밤새도록 신음하다가 차라리 이럴 바에야 빨리 목숨을 끊는 것이 더 좋겠다싶어 신학교 옥상으로 올라간 적도 있었다. 결혼 후 어떤 때는 아내가 내 머리 위에 올라가서 머리를 압박해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던 밤이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도 없이 많았다. 온갖 약을 구해 먹어도 낮지 않고 종합병원이나 한방병원을 찾아가서 진료도 해 보았고 국내 의사가 미심쩍어 외국에서 온 의사에게도 찾아가서 진료를 받아봤지만 느는 것은 한 움큼이나 되는 독한 약일 뿐 내 병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물론 이러는 가운데 아내와 함께 정성을 다해 쉬지 않고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질병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이 때 내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은 내가 죄가 많아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내보다도 훨씬 죄가 없어 보이는 어린 딸들에게 나 대신 기도하게 했던 사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비 성경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인지 성경을 공부해가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은 십자가의 은혜를 부인하는 생각이요 율법 언약의 바탕에서 기인하는 생각이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죄에 대하여 다시는 진노 하시지 않으신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을 죄로 여겨 그 백성들에게 진노를 퍼 부었지만 그러나 십자가로 맺은 은혜은약 아래 있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다시는 진노하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은혜언약 아래 있는 백성들은 저들이 받아야 할 모든 죄 값을 저들 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다 갚아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는 그 사실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상처받으시고 징계 받으심으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이 용서받았으며, 우리에게는 평화가 주어졌고. 우리에게 나음이 주어졌다고 분명히 선포하셨다.

혹시 멜 깁슨이 감독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는가?
그 영화가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영화가 너무 사실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비평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당하신 실재 일들에 비하면 그 영화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당시 로마 군병들은 아주 잔인하고 무서운 고문 도구들을 아무른 제제 없이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십자가의 예수를 죽였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런 모진 고통을 받으셨는가? 예수님이 그렇게 고난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에 다시는 우리가 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우리 대신 받으셨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럴진대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에게 질병을 주고 치명적 사고로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치신 일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행위인 것이다.

혹시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징계가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그 징계란 말은 징벌이란 의미 보다 훈련이나 훈육이란 말이 더 원문해석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교육하시기 위해 치명적인 고통의 도구들을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는가? 돌파구를 갈망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오히려 나를 위해 매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를 바라보라. 그리고 나를 향한 십자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라. 그리하면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주께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셔서 여러분들의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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