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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여! 그대는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는가?김한식 /거제호산나교회 담임목사

예전에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전전하며 숱하게 돌아다녀본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그중에 신아무개가 쓴 제이 이야기란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나에게 많은 영감들을 제공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떻게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왜냐 하면 소설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경험이 토대가 되어 엮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모델이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한계가 있듯이 인간의 창조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보면 그 작가의 삶을 엿 볼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을 즐겨 보았다.

그 중에 신아무개가 쓴 제이 이야기라는 책은 언어구사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인간 내면을 잘 그려내는 책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 책의 에필로그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앞을 내다보는 게 아니라 뒤를 돌아다보는 일은 쓸쓸하다. 후회와 미련, 아쉬움이 번갈아 가며 가슴을 들락거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과거는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명분이 되지 못한다”

옳은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늘 아쉽기 마련이다. 인간은 흘러간 과거를 에너지 삼아 오늘을 살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을 살 수 있는 힘은 내일이라는 목표가 결정되어 있어야 비로소 발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꿈을 이야기하고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멸된 사람은 더 이상 삶을 영위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내일에 대한 막연한 소망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내일이라는 것이 너무 불확실하다.
사실 인간사가 다 자기가 생각한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도 아저씨와 어린 왕자가 이런 대화를 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별이 있다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별이 돈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것이 명예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식일 수도 있고, 모든 인간은 그 별을 바라보며 오늘을 산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인간들에게는 내일이라는 목표가 정확하게 정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들은 각자가 자기만의 소망들을 만들어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내일에 대한 소망이라는 것들이 거의 모두 한 곳으로만 가고 있는데 그것들이 바로 돈과 권력과 섹스라는 것들이다. 인간이 타락하고 나서 참 가치를 잃어버리고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가치라는 것이 바로 그리로 수렴되기 때문에 인간들은 대부분 그 곳으로만 달려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만 하면 성공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자리에 도달하면 인생의 목마름이나 갈증은 완전히 해갈 될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내일에 대한 소망이라는 것은 참 제한적이며 가난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렇게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그 소망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제한적이며 가난한 다시 말하면 돈과 권력과 섹스에 몰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말머리를 돌려서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그런 가난한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소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감히 오늘 날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우리는 과연 어떤 소망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성경이 말씀하는 기독교의 최고의 가치는 현세가 아니고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이루어질 소망이 아닌 내세적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오늘날 우리를 향해서 세상 사람들이 소망으로 가지고 있고, 힘으로 여기고 있는 그런 것 말고 하나님 나라의 그 영광스러운 기업의 풍성함이 어떠함을 더 많이 알아서 그것이 주는 힘으로 이 땅을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는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내세 사상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래서 요즘 내세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현실 도피적인 사람”으로 판단을 내려버린다. “현실을 살아 낼 능력이 없는 무능력하고 용기 없는 사람”이라고 취급을 해 버린다. “이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게 많은데 왜 지금 내세를 걱정해야 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목적도 없고 계획도 없고 능력도 없는 약하디 약한 자 취급을 해 버린다. 교회 안에서도 천국은 그저 죽으면 마지못해 가는 곳 정도로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환자 병문안을 가서도 “천국은 나중에 가시고 여기서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사세요” 이래야 환영받는다.

아아! 이일을 어이 할꼬? 어떻게 하다가 한국교회가 이렇게 변질되어버렸는가? 본질을 놓쳐버리고 가지 말아야할 곳으로 너무나도 멀리 가버린 한국교회여! 우리가 어디서 첫사랑을 잃어버렸는지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아픔이 있기를 기도해 본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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