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은 위험해’ ‘행복 끝 고생시작’. 대학졸업시즌이던 지난 2월, 학교 인근 현수막에서 이 불온한 문구를 보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취준생들의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낸, 영탄조 문장의 근거를 졸업식장 분위기가 설명해 주었다.

식장이 썰렁하여 참석한 쪽이 오히려 민망했다. 이는 대졸 실업자 수가 1년 전보다 5.5% 늘어(42만 5천명) 4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통계와 무관하지 않을 터. 청년들은 졸업식장이 아닌 어느 곳으로 갔던 것일까? 이들 중 일부는 극장에 갔던 모양이다.

시인의 생몰 주기에 맞춰 영화 ‘동주’가 2월 17일에 개봉했다. 내 주변 관객들의 절대다수가 ‘동주’ 또래 청년이었다.
영화 전반부는 ‘동주’와 ‘몽규’, 두 문청의 소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일본유학 과정이 그려지고 후반부는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된 상황을 다루었다. 고등형사의 강압적인 취조, 고문을 감당하는 주인공의 내면구조를 과거에 교차시켜 나타낸 기법이었다.

‘동주’에겐 감옥 창 너머로 하늘을 보는 자유만 있다. 조국도, 이상도 소멸된 젊은이가 창살 틈새로 쏟아져 들어오는 별빛을 응시한다.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 해답 없는 청춘의 고뇌와 시대적 절망이 흑백필름으로 극대화된다.

관객들은 여느 때처럼 팝콘이나 오징어를 뜯지 않았다. 영화가 끝났어도 일어나지 않았고,엔딩크레딧이 올라갈 즘 흐느낌이 터졌다. 주인공 연보 위에 시가 나레이션 될 때였다.

그 눈물의 성분이 무엇일까. 영화 때문 만일까? 물론 가해자 일제를 향한 울분이며 근원적인 소명의식에 기인한 반응인 줄 안다. 그러나 답답한 주인공 신세에 미래절망적인 자신의 실존적 고통이 투영된 까닭이 아닐까, 울고 싶을 때 뺨맞은 아이처럼.

작금의 청년들 시름은 나이답지 않게 깊다. 채용불합격 메일에 수 백 번 좌절하고,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연명한다. 기운차고, 생기발랄하고, 성장을 거듭해야 하는 춘절기를 압류당한 그들에게 행복이란, 윤동주에게 멀기만 했던 ‘패?경?옥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책상을 마주했던 동무들의 이름’과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름처럼, ‘너무나 멀리’ 있을 뿐이다.

세습가난 가해자인 부모의 삶은 더 막막하다. 위협적으로 가해오는 금융질서의 톱니바퀴 아래서 흑수저 생존논리를 수용할 뿐이다. 부(富)와 권력이 편법을 정당화시킨 사회에서 자식에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살아가라고 말할 수 없다. 올곧은 삶의 방식과 기율 따위는 돈과 밥 앞에서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른들이 있긴 하다. 정치인 집단이다. 그들은 가짜를 진짜라고 우길 때 그 시를 인용한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아도 정작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그렇게들 외친다. 민초들의 삶의 애환을 위안해 주려는 개그는 분명 아닐 것이고, 죄 없는 시어(詩語)를 그렇게 자기식대로 의미변용을 하고 있다. 정치언어로 변질된 시어는 헛말과 빈말로 전락해 버린다.

기실 희망은 대학에서부터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제자 논문표절, 성희롱, 욕설과 폭행 등의 주인공으로 방송에 등장하는 스승들, 그들은 더 이상 건강한 가치관 확립을 심어주는 멘토가 아니다.

중국 용정의 윤동주 묘지에서 ‘기념사진 얼른 찍고 내려가자“고 채근한 쪽은 인솔선생이었고, 묵념을 권유했던 쪽은 오히려 학생이었다. 후쿠오카 여행을 안내했던 가이드의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돈벌이에 급급한 여행사 직원은 일본의 그 도시 명승지 유래를 꿰뚫고 있으면서도 수학여행 온 모국의 학생들에게, 윤동주 시인이 그곳 감옥에서 억울하게 죽었다는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각계각층의 기성세대 적당주의·불신주의 조장은 이제 예사 현상이 되었다.

방송에서는 고학력 청년 실업자 통계가 나온다. 올해 역대최고치를 갱신했다는 실업률의 신규 등록자가 된 ‘동주들’, 청년들은 남의 나라 ‘육첩방’처럼 좁다란 고시원 공간에서 창너머 빛나는 별을 본다. 그때 총선관련 뉴스도 들을 것이다. 누가 탈락되고 누가 공천되고, 누가 반발하고... 그 목표지상주의 속셈(상상을 초월하는 특권)에 청년백수의 절망감이 가중될 터.

그러나 아직 ‘다하지 못한 청춘’에 거는 기대가 있기에 ‘서시’에 희망을 얹어보는 그들이다.
죽는 날까지 세상을 우러러/ 한 점 안한 일이 없기를// 잡코리아에 뜨는 채용공고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입사를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면접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새 직업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잡코리아에 채용공고가 스치운다(어느 취준생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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