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방역당국을 긴장시킨 일이 발생했다. 이달 초에 진주의 사슴농장에서 10마리의 사슴에 ‘사슴만성소모성질병’ 양성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사슴들은 4년 전 함양의 한 사슴농가에서 사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방역 당국에서는 두 곳의 사슴을 매몰 처분하고 긴급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사슴만성소모성질병’은 광우병과 같이 ‘변형 프리온 단백질’에 의해 발생하는 사슴의 신경성 질환으로, 광우병에 빗대어 ‘광록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발생했다가 이번에 6년 만에 다시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광록병 청정지대가 아닌 것이다.

사슴은 고기, 피, 뿔 등을 얻기 위해 사육되는데, 국내에서는 대부분 녹용이라고 알려져 있는 사슴뿔을 채취하기 위해 사육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광록병은 사슴의 침, 분변, 혈액 등을 통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녹용은 사슴의 혈액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이번에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국내산 녹용의 섭취를 자제하라는 권고를 내 놓았다.

‘녹용(鹿茸)’이라는 말을 글자대로 해석하자면 ‘사슴의 새싹’이라는 뜻이다. 사슴의 뿔이라도 오래된 것은 녹용이 아니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보통 매년 3~4월경이 되면 사슴의 오래된 뿔이 탈락되고 나서 어린 뿔이 돋아나오기 시작한다. 5~6월의 뿔은 성장이 빠르고 혈관이 발달하여 많은 혈액을 함유하고 있다.

이 시기에 채취한 것이 녹용이다. 피가 다 빠져 나가고 각질화 되어 뼈 성분만 남은 늙은 뿔은 ‘녹각’이라고 부른다. 어린 뿔이 노화되어 가면서 회분 함량이 높아지기 때문에 딱딱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슴뿔 중에서 회분함량이 35% 이하인 것만 진짜 녹용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슴뿔이라고 해서 다 녹용은 아닌 것이다. 이 내용은 국가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고시한 ‘대한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 정해져 있다.

국민들은 막연히 ‘국내산 = 좋은 것, 우리 몸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녹용 문제로 들어가면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의원, 한방병원 등 한의 의료기관에서 사용되는 녹용은 광록병이 발생하지 않은 러시아, 뉴질랜드 등지에서 수입된 것이다. 캐나다나 미국 알레스카에서는 ‘엘크’라는 사슴 종류가 서식하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광록병이 발생되고 있어, 미국, 캐나다에서 생산된 사슴뿔은 국내로 수입하거나 유통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한편, 국내 사슴농장에서는 외국에서 수입한 꽃사슴과 엘크사슴이 주로 사육되고 있고, 여기서 채취되는 사슴뿔들은 건강원이나 식품회사 등으로 흘러가거나 농장 자체 판매망을 통해 직접 판매를 한다. 인터넷이나 홈쇼핑에서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녹용 관련 제품들도 모두 이런 식품쪽 유통경로를 거쳤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럼 국내에서 생산되는 사슴뿔은 왜 한의원에서 사용되지 않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회분함량 35% 이하’ 기준 때문이다. 국내의 사슴농장에서 채취하는 사슴뿔들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의약품인 ‘녹용’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약재 유통구조를 보면, 한의 의료기관에서는 모든 한약재를 제약회사를 통해 공급받아야 하고, 제약회사에서는 약재에 대한 유효성, 안전성 등 품질검사를 책임지며,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제약회사를 관리 감독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국내산 사슴뿔은 제약회사에서 실시하는 품질검사 단계에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의 의료기관으로 유통될 수 없다. 회분함량이 높은 것은 사슴뿔을 채취하는 시기를 늦추어서 생기므로, 생산자 쪽에서 조금 더 일찍 절각을 하면 충분히 기준을 맞출 수 있을 터인데, 왜 그렇게들 하지 않는지는 필자도 알 수 없다. 보통 사슴뿔은 무게 단위로 거래되는데, 회분함량이 높아지면 무게가 더 많이 나가니까 그렇게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와 더불어, 의약품 원료시장을 포기하고 식품 원료시장에만 공급하는 것의 이해득실을 타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공급시장이 분리되어 있는 상황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쉬운 장점도 있다. 국내 사슴농장에 광록병이 생긴 것과 한의 의료기관을 통해 처방받는 한약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녹용은 분명 효과가 우수한 약재이다. 특히 원기부족, 갱년기 장애, 허약체질, 무력감, 분만 전후, 당뇨, 결핵 등 큰 병을 앓거나 수술 후 건강 회복기에 녹용이 들어 있는 한약은 좋은 효과가 있으며, 특히 어린이 발육촉진, 건강증진, 체력보강에는 적은 첩수로도 유효한 효과를 발휘한다. 또 감기에 잘 걸리거나 코피가 잘 나는 허약한 체질을 개선시키고, 수험생이나 고시생 등 정신노동이 과다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녹용과 한약재들을 사용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의약품에서는 반드시 안전성과 효과성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이슈를 중심으로 보자면, 효과성은 ‘회분함량이 적절한가’, 안전성 문제는 ‘광록병으로부터 안전한가’로 판단할 수 있겠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