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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출판기념회김정희 /거제문예재단 경영지원부장

언제나 무채색 옷차림으로 조용히 오가는 여인. 그림으로 치면 한 폭의 난 같은 여인이다. 바로 거제문화예술회관 서양화 예술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여화백 이다. 여화백은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늘 호수 같은 미소로 인사한다. 그런 여화백이 의논할 것이 있다면서 나하고 차 한 잔을 나누자고 한다.

커피를 두고 마주한 그녀는 예의 그 호수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수필집을 출간했는데 일일이 만나서 전달하는 것이 힘들다면서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한다. 대형 음식점 같은 곳에서의 화려한 출판기념회는 본인의 성격상 안맞다며 고민을 나누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예술회관에서 운영하는 요기예 같은 공간이면 참 좋겠다면 나를 쳐다본다. 순간 작년 연말 오픈한 찻집인 ‘요기예’가 그녀가 원하는 장소로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는 평소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에게 간단한 요기를 위해 오픈한 공간이지만 이런 작은 예술행사에도 어울리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그녀의 성격과 딱 맞는 출판기념회가 될 것 같았다.

겨울이지만 그리 춥지 않은 볕이 아주 좋은 오후다. 예술회관 커피숍 ‘요기예’에 이동마이크를 설치하고 원탁을 준비하는 등 직원들의 분주함 속에 그녀를 위한 소담한 출판기념회 장소가 꾸며졌다.
화가이면서 수필가인 그녀와 95년 지병으로 작고한 남편인 시조시인 안영삼 선생의 유고 작을 엮은 부부작품집 “배롱나무” 출판기념회는 그렇게 개최되었다.

여화백은 오늘의 주인공다운 조금은 화려한 옷차림을 기대한 나를 무색케 한 무채색 여인으로 조용히 지인들을 맞이한다. 굳이 평소와 다르다면 얼굴에 좀 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올 사람 별로 없다는 그녀의 말이었지만 책 출간을 축하하는 지인들로 이미 요기예는 빈자리가 없었다. 평소 그녀의 깊은 성품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지금부터 이십년 전 오늘 출판기념회의 공동 주인공인 고 안영삼 선생은 존경하는 문단의 선배로써 거제문인협회에서 같이 활동하셨는데 지병이 악화되면서 더 이상 문협행사에서 얼굴을 뵐수가 없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4월 병원에서의 치료가 의미가 없어서 집에서 요양중이던 안영삼 선생의 병문안을 위해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 여화백은 남편의 병간호로 다소 지친 듯 한 모습이었지만 예의 그 조신함으로 방문객을 맞이하였다. 병문안을 다녀온 후 일주일이 지났을까?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거제시조 문단은 무원 김기호 선생이 일구어 놓은 시조밭에 맥을 잇는 후진이 없던 터에 안영삼 선생의 타계는 거제문단의 커다란 손실이었다. 한창 작품세계가 원숙의 경지에 드는 때에 훌쩍 떠나셔서 더욱더 문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여화백은 오늘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내빈이라며 나에게 형식을 차리지 않는 사회를 부탁한다. 여화백의 예술세계를 도란도란 나누던 중 지천명을 훌쩍 넘긴 여인이 마이크를 부탁한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은 후 한참을 울먹이더니 선생님 때문에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형편도 안 되고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는 어려운 시기에 선생님의 지도는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며 끝끝내 흐느낀다. 얼마나 절절하면 저렇게 흐느낄까 장내는 순간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여선생을 아끼는 지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가 평생 살아오고 살아갈 날들의 이정표로 기억되는 한편의 감동드라마였다.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일까? 조용히 앉아 계시던 이성보선생이 마이크를 잡는다. 특유의 해학과 맛깔스런 재담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드는 그는 오늘 분위기에 맞는 다소 격조(?)있는 재담으로 장내를 미소 짓게 하였다.

그날 장승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커피숍 요기예는 외부 행사 1호로 기억될 ‘여화백 부부의 출판기념회’로 인해 예술적인 정취를 많은 이들이 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각종 현란함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언제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질리지 않는 향기를 풍기는 여인. 그의 화폭에 고정으로 등장하는 옷핀은 그녀의 사랑을 받는 모티브로 옷과 옷을 연결해주듯이 이 각박한 세상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기도 하다. 또한 먼저 간 남편과의 추억을 단단하게 연결해 주는 상징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여화백의 수필집에 실린 “이사”에 보면 남편의 유품을 싸고 있는데 친구들이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새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남에게는 하잘 것 없는 것이지만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라고. 이 애틋한 그리움에서 보듯이 그녀의 화폭에 등장하는 옷핀의 의미가 한층 더 절절히 다가온다.

“이십 년 전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버린 그날도 벚꽃은 눈부시게 피었다. 상여꾼들이 멘 관위로 벚꽃이 하늘하늘 내리고 있었다. 그이 아픔을 다 덮어주듯이” 무채색 여인의 그리움은 언제까지나 영원하리라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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