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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가?바른정법, 바른인연(37)
▲ 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돈을 벌기 전에는 살기 위해 먹을 뿐이고, 벌고 난 뒤에는 대부분 먹기 위해 살아간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쨌거나 누가 인간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먹도록 만들어 놓았을까? 일 년에 단 한 번씩만 먹어도 체력이 유지되도록 창조해 놓았다면 저 빈민 촌락에서 많은 생명들이 기아로 죽어가지는 않을 터인데.... 말이다.

그렇게 우리 인간의 입은 무섭고도 무섭다. 수산시장에 가 본적이 있는가? 산더미 같이 쌓여져 있는 그 수많은 어물들이 모두 다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 흔적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인간의 입이 다시한번 무섭다고 느껴진다. 바다는 물론 팔도 평야에서 해마다 거둬들이는 그 수많은 곡식들이 모두 다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가 부서져 버린다. 인간의 입은 정말 가공할 무기이다.

납자가 서울 절에 있을 적에 행사 식자재를 구입하러 가끔 새벽 청과시장에 가 본적이 있다.

배추와 무등 채소와 가지각색의 과일들이 모두 다 인간의 입안에서 갈아진다. 그래도 인간의 입은 쉬지 않고 움직이려 하고 있다. 정말 지칠 줄 모르는 기계와 같다. 그것도 모자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거기다가 껌까지 씹어주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움직여 주지 않으면 어느 누구의 사생활이 그 입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질 것이다. 정말 인간의 입은 무섭기 그지없다. 그 속에 들어있는 조그마한 혀는 사람까지 잡아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렇게 무서운 것도 잘만 쓰면 천하백성이 태평의 노래를 부르게 할 수도 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맛있는 음식 중에서 진리에 입각한 진실한 말이 가장 으뜸이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 뜻을 의미하고 있다.

인간만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또 인간만이 생쌀을 씹지 않고 익혀 먹으면서 꼭 밥상을 차려 먹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미천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최소한 인간다워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답다는 말은 미안함을 느끼고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때라야 만이 인간 대접을 받는다.

똑같이 쌀을 익혀먹는다고 해서 모두 다 인간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인간은 최소한 인간다워지려고 노력할 때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나오게 되어 있다.

성인이 밥을 먹었다고 해서 나 역시 성인이 힘들게 만들어 놓은 인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보통 자가당착이 아니다.

똑같은 크기의 신분증을 가졌다고 해서 진짜의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인간의 지고한 권리를 공명하게 나누어 가지고자 욕심을 부린다면 그것만큼 후안무치한 일도 없을 것이다.

몇몇의 진짜 인간들 때문에 어줍잖은 내가 인간의 껍데기를 덮어썼다고 해서 똑같은 인간의 대우를 받으려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것은 그분들의 인격을 교묘히 찬탈해서 그들처럼 보이려고 거짓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도원에서는 밥을 먹을 때 다섯 가지를 먼저 생각하고 진지를 들었다.

첫 번째는 이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엄숙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약을 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미물들의 생명이 죽어갔고, 그것을 일구는 농부의 피땀 또한 끝없이 쏟아져 내렸을 것을 생각해 보면 등골이 오싹해 질 것이다.

또 추수와 탈곡과 운반, 그리고 부엌에서의 작반 노동을 생각해 보면 눈앞에 놓여있는 보리죽 한 그릇도 그저 감지덕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이렇게 까지 공들여 만들어진 이 밥을 과연 내가 먹어도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냉철히 따져 보는 것이다.

베를 짜는 직공도 손마디가 닳아 없어지도록 힘들게 노력해도 옷 한 벌 반듯하게 못해 입고, 땅을 파는 농부의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깊은 주름이 도랑처럼 파여져 있어도 따뜻한 밥 한 그릇 배부르게 못먹는다고 생각해 보면 눈시울이 금방 뜨거워진다.

그런데도 두 손을 하얗게 가진 이 미천한 수행자가 막행막식 (술, 담배등.....)을 하면서 무슨 염치로 이 고귀한 음식을 입속으로 넣을 수 있겠느냐고 자기의 가치를 매순간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나는 이 음식을 먹고 탐욕과 어리석음을 버려 그들의 노고에 반드시 보답할 것이다 라는 마음을 굳게 가지는 것이다.

똑같은 물이지만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고 하신 옛 조사스님의 말씀처럼 술, 담배 등등..... 을 끊고 계를 잘 지켜 바르게 수행하여 내 몸은 기필코 감로를 만들어 내는 육신이 되고자 이 음식을 감히 받아 먹는다고 생각한다.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에서 맛있는 음식이라도 양을 초과해서 먹어서는 아니 되며, 오직 그 음식을 수행하는데 기력을 돕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고 하신 그 말씀을 결코 잊지 않는 것이다.

네 번째는 의례적으로 밥 때가 되어 밥을 먹는다는 타성적인 생각을 버린다. 오로지 이 음식은 내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양약으로 복용한다는 마음으로 약 먹듯이 섭취한다.

육신이 고장 나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씀하신 절식의 가르침에 수순하면서 야위어 가는 이 몸을 보존하기 위해 이 밥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나 자신과 냉엄하게 싸우는 군량미로 이 음식을 받아 먹겠다는 것이다. 밥을 먹고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 빨리 불도를 이루어 위로는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다는 서원 아래 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힘이 있으면 남을 먼저 쓰러뜨리려고 하겠지만 나는 나 자신의 죄업과 교만을 이 밥의 힘으로 기어이 꺾어버리고 말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이 귀한 밥을 먹겠다는 것이다.

곧, 입춘(立春)이다. 경전에 나와 있지도 않은 삼재기도, 삼재풀이, 운수대통기도 등등..... 기도한다고들 야단이다. 애꿎은 남, 녀의 속옷을 부처님 전에 올려놓고 액땜불공 한다고들 떠들썩한다.

자, 이제 올 병신년(丙申年)을 맞아 잘못된 것을 그만두고, 부처님의 유지에 따라 위로는 불도(佛道)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올바로 제도하는데 그 수행의 숭고한 목적을 기리며, 이 수행을 위해 수행자는 신도들에게서 공양(供養)을 받고 그 조력으로 삿됨을 끊어 부지런히 정진(精進)해서 그들에게 바른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전법(傳法)함으로 그 공덕(功德)을 그들에게 회향해야 할 것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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