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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골 말라붙은 대송을 역사에 쓰다43번째 나무-덕포동 장자마을 소나무

덕포동 강망산에는 세오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전설은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과 거리가 가까운 거제는 당시 왜구의 약탈이 잦았는데 이곳에 살던 장 씨의 부인도 왜구에게 몸을 더럽히는 수모를 당했다. 남편 장 씨는 이 광경에 눈이 뒤집혀 낫을 들고 덤볐으나 되레 잡혀가 버리고 말았다.

정조를 잃고 남편까지 빼앗긴 부인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됐다. 대마도가 보이는 강망산에 암자를 지은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한 많은 눈물 속에 살다가 죽었다. 강망산(江望山)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며, 장 씨가 살던 마을도 장씨골이라 부르다 현재 장자골이 됐다는 이야기다.(*거제도 설화전집 발췌)

장자골은 현재 장자마을이라 하는데 산비탈 쪽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주변 소나무보다 월등히 큰 덩치 덕에 병사들을 호령하는 대장군의 모습이 비친다. 자태도 수려하다. 하늘로 늘씬하게 뻗은 줄기 위로 어지럽게 허공을 휘젓는 굵은 가지들이 반전의 묘미를 뽐낸다. 나무 무늬도 큼직큼직한 것이 영락없이 전장을 누비는 대장군의 갑옷 같다.

마을 노인들이 젊었을 때도 덩치가 지금과 비슷했다고 한다. 크고 빼어난 자태에 멀리서 지나가는 사람도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했을 정도였단다.

나무에 가까이 접근해보니 멀리서 느꼈던 장군의 위세가 벗겨지고 초라한 본모습이 드러났다. 나무가 있는 밭은 비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무줄기는 1/4 정도가 세로로 움푹 파였다. 나무 아래 버려진 새의 사체가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더했다.

이 나무는 이미 고사(枯死)했다. 한 70대 주민은 재작년까지는 잎이 났는데 지난해부터 잎이 나지 않아 이제 완전히 죽은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2003년 태풍 ‘매미’가 닥쳤을 때 가지가 다 부러져 그 뒤로 잎이 안 난다고 했다.

아무튼, 이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한번은 제대로 된 관리를 받기 위해 시 보호수로 지정하려는 시도도 해봤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나이는 100년에서 수백 년까지 추정된다. 취재할 때 이 나무의 흉고(사람 가슴 높이) 둘레를 재어보니 4m에 이른다. ‘섬을 사랑한 나무’ 첫 순서에 소개한 남부면 명사해수욕장 해송림은 수령 150년으로 추정하는데 가장 큰 나무의 둘레가 3.1m였다.

나무의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료를 통해 조림 시기를 확인하는 것과 밑동을 베어 나이테를 세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그러나 수백 년 된 노거수는 조림 자료를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줄기를 베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래서 ‘생장추(나이테 측정기)’라는 기기로 나무에 구멍을 뚫어 석유 시추(試錐)하듯 나이테를 연필 모양으로 뽑아내기도 하는데 이 또한 노거수에는 적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명사 해송림을 언급했듯이 수령이 밝혀진 비슷한 환경의 같은 수종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 방법은 같은 수종이라도 성질이 각기 다르기에 정확성이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명사 해송림보다 두껍다고 해서 더 오래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소문에 따르면 소나무가 있는 밭을 포함해 이 일대가 최근 주인이 바뀌었다. 산림을 들어내고 먹거리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했다. 소문대로 될지 알 수 없지만, 이 소나무가 곧 없어질 운명이란 건 분명해 보인다. 나무를 철거할 때 나이테를 확인하고, 거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여 나무는 참 신기한 존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무엇을 남기든지 생명이 빠져나간 사체(死體)만은 시들거나 썩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무는 죽어서도 사계절 변화가 없을 뿐, 그 형태는 오랫동안 유지된다. 가구로 가공된 나무는 더 오랜 세월을 버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무에 ‘죽었다’는 표현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기자가 고목(枯木)을 마주했을 때 두려움보다 숙연한 기분이 든 것도 사체가 아닌 다른 존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맺음말

지난 1년간 나무를 연재하면서 없던 지식과 정보가 싸락눈처럼 얇게나마 쌓였습니다. 그러면서 사람 이외의 생명과 사물에 대한 인식도 깊어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죽은 나무에조차 의미를 씌우는 정도가 됐습니다.
새해에는 이따금 나무 소개를 하면서 새로운 인식 전환을 위해 다른 소재로 찾아뵙겠습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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