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보니, 거제도는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다. 여기저기 숨은 비경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문화적 체취가 느껴지는 가운데 역사적 향기가 사뭇 남다르다. 그 중에서도 옥포만과 고현만은 오늘날 거제도의 숨은 저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옥포만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첫 승첩지로 유명하다. 이충무공은 옥포해전에서 왜군에 맞서 싸운 끝에 승전고를 울려 침몰 위기에 있던 나라(조선)를 구했다. 그 여세를 몰아 23전 23승으로 승승장구함에 따라 불패신화의 주인공으로 남아있다. 반면, 고현만은 17만 3천명의 포로가 수용된 포로수용소 유적지로 유명하다. 그 잔재가 군데군데 남아있어 전쟁의 상흔도 짙게 드리워진다.

그뿐이랴. 거제도는 IMF 한파로 국가경제가 침몰 위기로 치달았을 때 불빛이 꺼지지 않은 도시로 유명했다. 양대 조선사가 조선경기의 호황으로 숨은 저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이로써 수많은 실업자를 구제함은 물론 국가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단초로 작용했다. 옥포만과 고현만의 숨은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때 옥포만의 중심은 대우조선해양(1973~)이었고, 고현만의 중심은 삼성중공업(1974~)이었다.

1970년대에 창립한 이래 양대 조선소는 40여 년간 거제지역 경제의 8할을 책임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조선해양기술로 세계 최대의 조선해양강국으로 발돋움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만큼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크다. 위상에 걸맞게 1인당 국민소득도 어느새 전국 최고 수준(4만 달러)을 넘어섰다. 조선해양관광도시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힌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거제도는 조선해양산업의 장기불황으로 엄청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양플랜트 사업의 부실로 3분기까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4조 3천억, 1조 6천억의 적자를 낸 것이다. 이러한 여파로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지역상권이 침체된 지 오래다. 구조조정의 한파가 몰아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비상등이 깜빡이며 불안정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그마저도 꺼져버린다면 조선해양산업 역군으로서의 보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옥포만과 고현만의 뿌리 깊은 역사를 필자가 굳이 뒤적거리는 것은 거제사람의 숨은 저력을 다시 일깨우고 싶은 바람에서다.

불황으로 인한 피해가 지역경제로 확산되는 가운데 거제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발 빠른 대응책을 내놓았다. 학동케이블카 설치, 자연테마생태파크 조성 등 관광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이는 조선업에 집중된 거제경제의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엊그제 착공식을 한 고현항 항만재개발사업도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눈 여겨 봐야 한다. 서울 여의도 공원의 52%에 달하는 공원·녹지와 전용 자전거도로, 해안산책로 등이 조성되고, 여객터미널, 마리나, 부두, 물양장 등 항만시설도 확충된다는 게 아닌가. 이는 거제시가 해양관광휴양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미래성장동력의 한 축이 될 줄로 믿는다.

어찌하랴. 이순신 장군과 같은 리더십이 정녕 필요한 때다. 옥포만에서 승전보를 울린 이순신이 그 여세를 몰아 23전 23승의 불패신화를 남겼듯이 우리는 불황의 한파에서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이겨본 자만이 이긴다고 하지 않던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먼저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에서 이겨내는 일이 급선무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거제도는 ‘클 거(巨)’와 ‘구할 제(濟)’자로 하나의 큰 포용력을 상징한다. 여기서 거제인은 ‘크게 구하는 섬, 거제도’의 출발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불황으로 침몰할 위기에 처한 거제지역 경제를 살리는 주역은 따로 있을 리 없다. 거제사람이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점에서다. 한번 밀리면 끝까지 밀린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거제인 스스로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야 한다. 최1선에서 나라를 지킨 이충무공처럼 악착같은 마음으로 난국을 헤쳐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26만 명의 거제사람이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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