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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회하 담/무이사 주지

최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2차 민중총궐기대회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1차 대회 때에 있었던 불법 폭력시위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염려를 하게 되었고, 경찰은 처음부터 집회를 불허하였다. 주최 측이 평화시위를 약속하였으나,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세 차례나 허가를 해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법원이 집회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집회가 이루어졌다. 우려했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위대는 약속대로 질서를 지켰고, 종교인들도 꽃길을 만들어 평화시위를 도왔다. 정말 다행이다. 민주 국가에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그 방법이 불법적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폭력적인 방법은 더욱 안 된다. 또한, 국민을 믿지 못한다고 하는 정부는 반드시 참회를 해야 한다. 폭력적인 불법과 불신하는 불의(不義)는 모두가 죄악(罪惡)이다. 아무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죄(罪)가 된다.

죄(罪)란 무엇인가? 죄의 어원은 ‘과녁<的>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활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활을 쏜다는 것은 우리가 신구의(身口意)로 일으키는 모든 행위를 말하고, 과녁은 우리가 목표하고 목적하는 삶의 최고 가치인 정의(正義)와 진리(眞理)를 말한다. 죄에 대한 해석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서 그 기준과 이해를 달리하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어서 생긴 인류의 원죄(原罪)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은 본죄(本罪)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탐진치 삼독(三毒)이 죄업(罪業)의 근본이고, 무명(無明)이 대죄(大罪)라고 가르치셨다. 무명(無明)에 따르는 무지(無知) 때문에 잘못된 견해와 잘못된 언어와 잘못된 행위를 하여 죄업(罪業)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명지(明知)한 자는 보다 높은 앎을 공부하여 지혜롭다. 무지(無知)한 자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가 중층적(重層的)으로 쌓여서 어리석게 된다. 중층적인 무지의 구조 때문에 무명이라 불리고, 무명에 빠진 자의 속성은 그 무지에서 벗어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쁜 것이 나쁜 것인 줄을 모르면, 그 나쁜 것을 계속하게 된다. 모르고 지은 죄는 그것이 죄인 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죄를 짓게 되고, 고쳐질 가능성도 없다. 그래서 무명이 대죄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지가지의 죄를 알게 모르게 짓는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수리하여 고치듯이, 우리의 죄업도 소멸하여야 한다. 원효 대사는 ‘뉘우친 죄는 이미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참회(懺悔)를 말씀하신 것이다. ‘참(懺)’은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는 앞으로는 그런 잘못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다짐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에서 ‘죄인도 회개하면, 낙원에 들어 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회개와 세례성사로 원죄를 사하고, 죄 없는 깨끗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유마 힐 거사는 ‘마음의 때가 끼면 죄가 되지만, 마음의 때를 벗으면 죄 또한 녹아 없어진다.’ 라고 하셨다.

진정한 참회를 통하여 본래 청정한 자리인 자기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 죄업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자비로우면서도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고 이익 되게 하며, 바른 지혜를 갖추는 적극적인 노력이 항상 필요하다. 죄업의 소멸이 없이는 선정(禪定)에 들 수도 없고, 해탈을 이룰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대로 받는다. 모든 것은 자작자수(自作自受)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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