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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준다는 그 꽃, 불황 속에 피어나다41번째 나무-공곶이 소철나무

“조기자, 기사가 될란지 모르겠는데 혹시 쓸라믄 쓰그라. 내 키우던 소철나무에서 열매가 달렸는데 이기 50년 만에 열린 기거든”
“아 예 어르신, 50년 만에요? 와 억수로 귀한 거네요. 근데 소철나무가 먼데요?”
“아...소철을 모르나?”
“예 죄송합니다. 제가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일운면 공곶이 대표 강명식(84) 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소철? 소나무 종류로 짐작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민망하게도 신문사 사무실 한쪽에 있는 화초다. 야자수처럼 생긴 이 나무는 키가 작고, 몸통에서 뻗은 가느다란 줄기에서 좌우로 빽빽이 길쭉한 잎이 돋는다. 줄기와 잎은 가늘지만 억세고 뾰족해서 찔리면 아플 정도다.

이름은 되살아 날 ‘소(蘇)’에 쇠 ‘철(鐵)’을 쓴다. 철분을 좋아해 허약해졌을 때 쇠막대를 곁에 꽂아두면 다시 기운을 찾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철은 해피트리(행복나무)나 고무나무처럼 살짝 진부한 관상수이지만, 화초 좀 기른다는 가정이나 사무실에는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잘 기른다면 수십 년을 살면서도 몸집은 그만큼 불어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윽이 사랑받는 품종이다. 사실 너무 오래 살아 처치 곤란인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원래는 중국 동남부나 일본 남부 지방이 원산지인데 우리나라에도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다만 제주도에서는 실외에서도 자라고, 육지에서는 주로 따듯한 실내에서 키운다. 그래서 이번 결실은 의미가 깊다. 아열대 식물인 소철이 육지의 실외 환경에서 50년 동안 살아남아 열매까지 맺어서다.

열매는 암꽃 속에 열린다. 소철은 은행나무처럼 암수가 다른 몸인 ‘암수딴그루’다. 그래서 수꽃과 암꽃도 따로 핀다. 둘 다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보기 힘들어 어쩌다 꽃이 피면 ‘100년에 한 번 피는 꽃’이라며 화제가 된다.

실외에서 자생이 가능한 제주도에서는 ‘수꽃’이 피었다는 뉴스를 더러 접하지만, 육지에서는 보기 어렵다. 거제에서는 지난 2011년 거제자연예술랜드에서 수꽃이 피어 눈길을 끌었다. 반면 암꽃은 인터넷에서도 관련 정보가 별로 없다. 사진정보만 있을 뿐 목격담은 찾기 힘들었다.

그런 암꽃이 수선화로 유명한 공곶이에 피었다.

강명식 씨가 농구공보다 크다고 했을 때는 실감이 안 났는데 눈앞에 마주하니 그 크기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어르신의 상반신이 가려질 정도다.

짙은 녹색의 소철 잎이 사방으로 뻗어있고, 그 가운데 둥글고 커다란 꽃이 놓였다. 어찌 보면 꽃과 잎 전체가 거대한 녹색 꽃을 이룬다. 게다가 저 뒤로 내도를 품은 해안 절경이 펼쳐져 장관이 따로 없다.

암꽃은 그 자체가 열매 주머니다. 꽃 안에는 크기가 밤톨만 하고 짙은 주황색인 열매가 수백 개 열렸다. 자세히 보니 꽃은 소의 꼬리처럼 생긴 수십 장의 살구색 잎이 아래에서 위로 겹겹이 감싸고 있다. 열매는 이 잎줄기에 좌우로 4~6개씩 매달려 있다.

이 소철나무는 강 씨가 약 47~48년 전 공곶이에 농원을 가꾸기 시작할 때 종려나무와 함께 판매 목적으로 심었다. 소철은 씨를 심기도 하고, 몸통에 작은 잎이 돋으면 그것을 떼어다 따로 심는 ‘분주(分株)’를 통해 번식시키기도 한다.

50년 전 당시에는 날씨가 온화한 거제에서도 잘 자랄 거라 기대하고 씨를 한 마대나 가져와 심었다. 그러나 계절에 따라 얼고 녹기를 반복하다 대부분 고사해버리고 현재 몇 그루만 남았다.

강 씨는 올해 초 이 소철나무에 수꽃의 화분(花粉)을 뿌렸다. 이를 ‘수분(受粉)’ 즉 가루받이라고 한다. 수분에 성공한 소철은 올해 4월께 꽃망울을 맺더니 점점 부풀어 현재 그 속의 씨까지 완전히 무르익었다. 이 덕분에 강 씨는 인생을 함께 보낸 50년 지기 소철나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씨를 직접 받아내는 결실을 보았다.

소철나무 꽃은 이처럼 힘들게 피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이 소철 꽃을 본 한 지역민은 “요즘 조선 경기가 불황이어서 지역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이 꽃이 길조가 돼 큰 행운을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뻔한 미신이지만, 어떻게 보면 핼리 혜성(출현주기 76년)보다 보기 힘든 꽃이 거제에 피었으니 쉽게 보러 갈 수 있는 거제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가 큰 행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 공곶이 농원 강명식 대표와 소철나무 암꽃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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