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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알고 난 후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긴한 일 중인데 집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받아보니 정치 관련 여론조사였다. 내년 총선에 대비하여 벌써 물밑작업이 시작된 모양이다. 일전에 본 방송(그것을 알고 싶다, SBS)이 떠올라, 불에 덴 듯 수화기를 놓았다

방송 내용은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는 중심에서 출발했다. 특권을 이용하여 부정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의 인생관, 가치관이 측근들의 실증, 실언을 바탕으로 밝혀졌다. 운전기사, 수행원, 보좌관들은 자신만이 알고 있던 일급비밀을 털어놨다.

기자 질문에 응답하는 차원이었지만 자신의 심경도 보탰다. “저도 한번 사용하지 않은 욕을 들었으며”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너무 심했다”고 했다. “현직 국회의원의 말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상상도 못한다” 불안한 음성에서 내면의 참혹한 정서가 읽혔다.

시청 내내 슬픔과 분노가 밀려왔다. 그러다 허탈감을 느꼈고, 이 나라 국민인 것이 부끄러웠다. 창피함이 상실감으로 이어지자 이제 체념상태에 빠졌다. 체념으로 인한 무기력증은 말기환자의 심적 변화과정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치료불가 판정 받은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기까지 몇 단계 내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처음에는 치료불가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다, 나는 아니다’(Not me). 절대 부정 단계가 지나면 '하필이면 왜 나야(Why me?)'라고 부정이 한 풀 꺾인다. 이어 원망단계를 지나 타협 단계에 접어든다. 마지막이 '누굴 탓하랴. 다 내 업보인 것을‘ 하고 체념하게 된다는 것.

이 단계별 추이는, 범죄가 발각되었을 때 죄인이 자신의 처지를 수용하기까지의 징후와 같다고 한다. 국회의원들로부터 배신감을 느낀 국민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설마 그랬을까?’ 하고 반신반의 하다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그럴 수가?’하고 절망한다.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혹시’ 하는 기대로 또다시 투표를 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국민들의 눈에 국회의원 모두는 도긴개긴이다. 즉 비인(非人)으로 보인다.

서양 사람들은 ‘사람’을 가리켜 ‘human being’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사람이 되어 감’이다. 완성된 인간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한 사람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도 ‘살다’라는 움직씨가 ‘사람’의 어원이다. 사람 / 살다 / 삶. 그러고 보면 인간은 ‘사는 동안 차츰차츰 자기를 가꾸며 한 목숨붙이를 이루어 가’는 존재이다. 여기서 주제어는 ‘자기를 가꾸며’이다.

‘그것이~’에 등장한 인사들은 권력욕으로 자신을 가꾼 유형이었다. 그는 “목사 아들이라 나쁜 짓은 할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부친의 직업과 종교로써 정치인생을 포장하였으나 결국 진범임이 들통나면서, 동종 인사들의 ‘그것까지’(묻혀있는) 유추하게 했다. 코미디언 국회의원(故 이주일)이 정계를 떠나면서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했다”더니, 그야말로 블렉코미디였다.

이들을 고발한 측근들은 밥벌이에 급급한 서민층이다. 그들은 권력은 없지만 사람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가꾸어 가야하는 지)를 알고 있었다. 위험을 불사하고 불의에 저항한 이들이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다.

선거철만 되면 금배지를 달고 싶은 자들의 몸부림이 숱한 화제를 뿌리며 시작된다. 최고의 사람값을 권력으로 매긴 탓이다. ‘봉사’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애국심을 발휘 할 기회를 호소한다. 민중을 향하던 요구가 급기야 양쪽 진영을 향하면서 무기가 된다. 의미소(意味素)를 상실한 말(言)들이 섬뜩할 정도다. 이런 정치언어에는 미래와 희망은 없고, 사리사욕만 그득하다.

근일에 선진국 국회의원에 대한 글을 읽었다. 스위스 현지에서 보낸 기사(오마이뉴스, 유로피언드림)였다. 취재진에게 그 나라 실정을 말한 의원(크리스천 와서팰른)의 정치철학은 감동이었다.
“의정활동은 직업이 아닌 봉사입니다... 제겐 사무실도 비서도 없습니다. 지급되는 예산으로 비서를 고용할 수도 있지만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노트북과 노트가 있는데 굳이 비서까지 고용할 필요는 없죠. 사무실도 필요 없어요. 의원이 좋은 법을 만들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되도록 많은 시민들을 만나야 하잖아요.”
영국도 다르지 않다. 모든 국회의원은 평일 각자 자기 직업에 충실히 일하다가 주말이나 공휴일에 국회에서 일하고 정치 자금은 깨끗한 자금으로 투명하게 기탁받는다고 한다.

권력과 돈과 지배라는 목적을 세워놓고 의정활동을 일삼은 이땅의 일부 의원들, 그들로 인해 범법자와 위정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공통점으로 해석된다. 둘의 리얼리티가 동일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봉사정신=거짓말’은 당대의 정답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인력과 엄청난 특혜는 계속되고 있다.
체념 상태에서 외친 이 변방의 여성(女聲)이 그 높은 곳까지 닳을 리 없다. 그래서 총선불참과 여론조사 무응답을 다짐했다. ‘될대로 되라’의 후유증이 우려되긴 하지만... ‘그것을 알고 난 후’ 내린 결론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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