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I ♡ GEOJE
이파리가 닮은 늙은 나무와 어린나무38번째 나무-수양동 양정 팽나무

이번 주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많았다. 큰비는 아니지만, 앞으로 닥쳐올 겨울 추위를 예고하듯 산과 들에 물든 단풍을 우수수 떨어트렸다.

앙상한 가지에서 한 해를 시작해 봄에는 여리디여린 연두색을 띠었다가 여름엔 강인한 짙은 녹음을, 가을로 접어들면서 붉은 화려함을 자랑했던 거제 나무들이 다시 헐벗어지고 있다.

지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거제시 보호수 관리대장에 있는 나무들은 거의 다 소개했다. 남은 분량은 그야말로 그 어떤 매체에도 기록되지 않고, 해당 지역 주민들만 아는 나무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번에 소개할 양정 당산나무는 운 좋게 찾아냈다. 원래는 수월마을 수월천 도롯가에 홀로 선 느티나무를 취재하기 위해 수양동 주민센터에 도움을 청했는데 이 나무를 대신 알려주며 양정 통장을 소개했다.

신기민 통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나무는 팽나무(포구나무)로 나이가 400년 가까이 된 마을 당산나무다. 위치는 현재 공사가 한창인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 현장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양정동 396번지 일대다.

알려지지 않은 나무치고는 주변 정리가 웬만한 보호수보다 잘 돼 있다.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풀을 베고 청소하고 있다고 했다. 널따란 공터에 입구라도 되는 양 돌탑 두 개가 세워져 있고, 그 안쪽에 아름드리 팽나무가 서 있다. 그 곁에 어린 팽나무가 이웃하고 있다.

큰 팽나무의 흉고(사람 가슴높이) 둘레는 4.5m다. 나이가 400살 치고는 아담한 편이다. 지난 19번째 섬나무에서 소개한 하청면 유계 서상마을 팽나무는 350~400살(추정)인데도 이보다 훨씬 작았다.

신기민 통장은 현재 논밭인 이 일대가 예전엔 당산이었고 했다. 음력 섣달그믐(한 해 마지막 날)에 스님이 와서 밤 11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한 시간 동안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제를 올린 대상은 팽나무가 아니라 돌탑이다. 어린 팽나무 옆에 있는 큰 돌탑을 할아버지 돌탑, 맞은편 작은 돌탑을 할머니 돌탑이라 부른다. 오래전 당시 화폐였던 엽전을 제물 삼아 땅에 묻고 그 위에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또 7월 보름날인 ‘백중’에도 음식을 차려 제를 올렸다. 이 시기는 가을 추수를 앞두고 잠시 한가한 때인데 농사일에 지친 머슴들에게 이 음식을 대접하며 하루 쉬게 했다.

이 같은 풍습은 규모가 줄었으되, 여전히 마을 사람들이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돌탑 옆 어린 팽나무는 약 30살 정도라고 했다. 큰 팽나무의 씨가 이렇게 자랐단다. 오래된 팽나무는 피부가 거칠고, 살집이 울퉁불퉁하며, 가지는 우산처럼 옆으로 퍼진다. 이와 달리 어린나무는 피부가 매끄럽고, 가지는 위로 뻗쳐 느티나무와 비슷해 보인다.

기자처럼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잎을 보면 구별하기 쉽다. 느티나무의 잎은 전체적으로 뾰족한 모양이고, 잎맥이 직선적이다. 반면 팽나무는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잎맥도 부드럽게 굽었다. 이 어린나무의 잎은 곁에 있는 제 어미와 똑 닮았다.

예부터 사람들은 나무를 사람처럼 대했다. 할배·할매나무처럼 암수 쌍을 붙인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입혀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각인시켰다. 오래 기억된 이야기는 전설이 된다.

양정의 두 팽나무는 부모자식 사이다. 이 두 나무가 다음 세대에게 전설로 남을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꾸며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먼 훗날 덩치가 비슷해져 부부나무란 엉뚱한 별명이 붙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행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icon400년 만에 정체 밝힌 문암의 늙은 나무 icon이파리가 닮은 늙은 나무와 어린나무 icon작다고 무시 마오, 귀한 감나무라오 icon세월이 파고든 물푸레의 깊은 주름 icon일본군도 벌벌 떤 양화마을과 느티나무 icon아름드리 사환 느티나무, 100살도 안 살았네. icon연초 명동에서 가을을 만나다 icon가지마다 꼬마들 웃음이 주렁주렁 icon돌아본 이 없어도 묵묵히 지킨 향기 icon당산목과 교회의 절묘한 100년 동거 icon신계 팽나무 아래에 ‘애민(愛民)’ 있더라 icon“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구나” icon우리가 몰랐던 한곡마을의 보물 icon영산 옥녀봉, 팽나무 타고 복 전하다 icon시방과 이수도 전설, 느티나무는 다 봤겠지 icon“내 나이? 신라시대에 태어났다오.” icon속사정 몰라도 이 나무 특별하다 icon신굿님 묘 지키는 청포 팽나무 icon자연이 지은 오페라 하우스 icon소나무와 부부 맺은 옥동 팽나무 icon할배와 할매, 그리고 난쟁이 나무 icon“우리 당산목이 최고로 좋다” icon가랑이 물 솟으면 비가 온다네 icon아이 웃음소리 가득 찼던 그늘이 그립다 icon고슬고슬 잘 지은 하얀 쌀밥 icon모감주숲, 황금빛 여름을 기대하며 icon만첩벚, 늦게 피어 더 예쁘다 icon긴 세월 어깨 맞댄 불편한 사이 icon솟구치고 굽이치는 기세가 용을 닮다 icon고향 떠난 자리에 벚꽃이 가득 피어 icon할매 잃고 홀로 남은 할배나무 icon절개와 굳은 약속의 상징, 외간 동백나무 icon애정으로 살아난 방하마을 팽나무 icon충절·효자·열녀의 마을, 산촌 팽나무 icon춘당매가 지기 전에 오세요 icon팽나무 아래서 피어난 대금마을 이야기 icon'김 현령재' 길목지기 100살 팽나무 icon거제 1호 천연기념물을 기억하라 icon노을 머금은 명사 해송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