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었을 것이다.
“왜, 너와 나는 이렇게 임금과 세자로 만나서 죽어가는 너를 앞에 두고 지금이사 너를 아들로 생각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뒤주 안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향해 오열하는 ‘사도’의 장면을 보고 자식을 둔 부모라면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재위 기간 내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에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왕으로 만들기 위해 특별히 세자 학습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런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어린 시절 세자는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에게 기쁨이 되어주었으나,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대에 못 미쳐 영조는 실망을 느꼈다.
글 읽기를 즐겨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공부보다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가진 세자는 영조의 바람대로 성장하질 못했고, 이런 세자의 모습이 영조는 못마땅했다.

세자 또한 영조의 바램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하고 질책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어 마지막엔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끊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가 시작된다. 물론 이면엔 정치적 배경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결국 자식을 왕의 위치에 맞게 키우기 위한 부모의 눈높이가 자식의 앞 길에 걸림돌이 되었고, 천고에 있을 수 없는 비극의 역사를 낳게 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세종대왕은 조선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418년에 왕세자에 책봉되어 같은 해 8월 22세의 나이에 태종의 왕위를 물러 받아 조선의 빛나는 역사를 만든 왕으로 남아 우리 국민 모두의 추앙을 받는 대왕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세종대왕은 어느 한 분야에만 업적을 쌓은 임금이 아니다.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관심을 보였으며, 특별히 집현전을 설치하여 왕립학습기관으로 확장하고 젊은 학자들을 등용시켜 한글창제의 업적을 쌓지 않았던가?

세종대왕의 이런 다양한 분야의 치적은 왕을 보필하는 관계되는 사람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세종대왕 본인의 뛰어난 창의력과 백성을 사랑하는 인성이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세종대왕의 이런 창의성과 인성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태종은 일찍이 양녕. 효령, 충령 세 아들을 키우며 충령은 세자가 될 아들이 아니기에 세자를 위한 특별수업을 강행하지 않아 세종은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하는 많은 일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을 즐겨 읽고, 음악을 좋아하며, 여러 가지 놀이에도 관심을 가지며 유년 시절부터 왕이 되어야 하는 부담감 하나 없이 학문도, 놀이도, 탐구하고 사고할 수 있는 분야의 I분야의 일을 즐기며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셈이다.

전문적인 교육용어로 세종은 타의에 의한 강제적인 학습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스스로 익힌 셈이다. 그러기에 그 속에서 학문의 즐거움을 스스로 찾아 학습에 대한 외적 동기보다 내적 동기에 의해 자신을 다져간 셈이다. 학습활동에 대한 내적 동기가 발달한 사람은 누구의 눈치나 보여지는 것에 관계없이 그야말로 자신이 스스로 즐기며 그 일을 끝까지 파고 들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종은 내적 동기가 뛰어난 사람이기에 오히려 다중지능을 갖춘 창의력과 인성을 겸비한 귀한 사람 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부모가 되면 자식에 대한 바램 없이 그냥 자녀를 내놓고 키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부모는 내 자식에 대한 기대치를 암암리에 정해놓고 자식 앞에선 전혀 부담 없이 너의 길을 가라고 넌지시 속내를 숨기고 있다.
오랜 학교생활 끝에 얻은 경험에 의하면 지나친 부모의 눈높이는 자녀의 어깨에 커다란 짐을 얹어놓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자녀들은 그 부모가 얹어준 짐이 과하다고 바로 전하지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학생이 많다. 그런 학생은 늘 얼굴에 그늘이 있으며 안정되지 못하고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한다. 그리고 지나친 경쟁의식에 스스로를 얽어매고 심할 경우엔 학교생활에서 오는 지적 결과나, 정의적 결과에서 부모를 속이게 되는 경우까지 범하게 되기도 한다.

부모의 눈높이가 자녀를 그렇게 내몰게 되는 셈이다.

이제 내일 모래면 수학능력 시험을 본다. 수능성적은 예언적 평가에 속해 대부분 그 시험점수에 따라 자신의 길을 택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저 긴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이기에 고3학생들이 지고 있는 짐을 알고 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눈높이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한번쯤 고민해 보자. 부모의 눈높이와 자녀의 눈높이가 일직선상에 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마는 그렇지 못할 경우 부모의 큰 욕심에 부모 자녀 간을 가로 막는 벽을 만드는 일이 생길 수 있음을 한 번 쯤 생각해 두자.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