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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다고 무시 마오, 귀한 감나무라오37번째 나무-학동 수산마을 감나무

지난 4월 ‘용송(龍松 본지 731호)’ 취재 이후 7개월 만에 학동을 다시 찾았다. 그때는 새싹도 돋지 않은 초봄이었는데, 여름을 보내고 가을 막바지에 이르니 학동으로 가는 길이 온통 울긋불긋 장관을 이룬다.

특히 구천댐 수면에 비친 단풍과 푸른 하늘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차를 세우고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누르고 싶지만,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딱히 차 세울 공간이 없다는 게 마냥 아쉽다.

특정 나무를 사람처럼 취재하는 코너라 한 개체만 다루고 있지만, 이처럼 사시사철 거제의 풍경을 변화시키는 산과 들의 온갖 잡목들이야말로 거제의 귀한 보물들이다.

학동 몽돌 해변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아직 따듯해서 그런지 가벼운 옷차림의 나들이객이 많았다.

이번 나무가 있는 곳은 학동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산마을이다. 기자처럼 거제 현지인(內地人)이 보기엔 그저 평범한 마을이겠거니 하겠지만, 이번 기회에 한번 둘러보니 펜션이 꽉 들어찼다. 이미 수많은 외지인이 지역민도 보지 못한 학동 비경을 먼저 보고 갔을 거로 생각하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수산마을 앞 도로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도로 맞은편 민박 주택 안에 이번 주인공인 감나무가 있다. 이 주택은 마을회관과 이웃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마을 안길이 나 있다. 주택 담벼락엔 감나무보다 훨씬 큰 팽나무가 끼어있다. 거기서 두세 발자국 거리에 감나무가 있다.

팽나무가 워낙 커서 그 그늘에 가려서인지, 아니면 감나무 자체의 본세가 뒤처지는 것인지 아무튼 다른 보호수들과 비교해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이미 감도 잎도 다 떨어져 혼자 겨울을 맞은 듯 우중충해 보인다.

이 감나무는 1996년 거제시 보호수 마을나무 12-10-3-8-1에 지정됐지만, 사유지라 그런지 보호수 안내판도 없어 그 관리조차 소홀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보호수 관리대장에 따르면 나이는 150년 정도이고 흉고(사람 가슴 높이) 둘레는 1.6m이다. 또 나무껍질 무늬가 일반 감나무와 다르게 바둑판처럼 네모 반듯하며, 수산마을 당산목으로 3년에 한 번씩 마을 번영과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참 난감했다. 사유지에 있는 보호수라니. 민박집은 굳게 닫혀 있어 담 너머로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눈대중으로도 참 특별할 것 없는 나무다. 실제 크기도 관리대장이 안내한 것에 못 미치는 것 같다. 그냥 시골 어디 집에나 있는 감나무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점들 덕분에 이 나무는 범상치 않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감나무는 한 그루뿐이고, 전북 기념물로 한 그루가 더 있다. 감나무와 같은 과일나무가 오랜 세월 사는 것은 흔치 않다. 열매를 맺는 데 온 힘을 다 쏟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나무 관련 서적에 따르면 한때 골프채의 머리로 쓰기 위해 우리나라 감나무가 적잖이 베여나갔다. 지금은 대부분 금속으로 골프채를 만들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감나무 골프채가 최상품이었다고 한다.

이 감나무는 또 예전에 마을 정자목 역할도 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들에 따르면 현재 민박집터에 집 두 채가 있었고, 담은 없었다. 누구나 감나무 아래서 쉬다 가고, 고사도 지냈다. 그러다가 새로 집을 지으면서 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집주인은 계속 바뀌어 현재 주인도 이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했다.

이 나무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마을회관 뒤쪽에 사는 오완기(87) 옹이라 했다. 마을에서 가장 어른에 속하고, 이장도 수십 년 했다. 할머니는 1살 더 많다. 원래 문동 사람인데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17~18세 때 이곳으로 급히 시집왔다. 시집 못 간 동네 처자 2~3명은 끌려가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감나무에 대해선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산처럼 물처럼 늘 곁에 있었을 뿐, 누가 왜 심었는지 존재 이유까지 알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감나무로 인해 한 가지 고충은 있다. 보호수지만 개인 소유라서 그런지 거제시가 관리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보호수 지정만 해놨지 한 번도 살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집주인 역시 베지도 못하고, 관리도 안 되는 곤란한 입장을 털어놨다.

이 코너를 진행한 지 1년이 다 돼간다. 보호수 관리에 시의 역할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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