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도 무던히도 닮았다.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 없는 것이 핏줄인 모양이다. 65년 만에 닮은꼴로 만난 가족들이 꺼이꺼이 울면서 부둥켜안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여든, 아흔을 넘긴 이산가족들이 휠체어나 구급차에 의존해 금강산 상봉장을 찾아야 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그런 만큼 혈연의 관계는 남남이 될 수가 없다. 남남으로 만난 사람도 만나고 싶을 때 만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길이 먼 것도 아니고 교통이 불편한 것도 아니다. 생사여부가 궁금하면, 전화 한통이면 가능한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든 영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폰 세상이 열린 지도 벌써 오래다. 그런 점에서 산 사람이 못 만나야 할 이유는 없다. 삼천리금수강산 어디에서든 살아있어야 만날 수 있고, 만나야만 혈육의 정도 깊어지는 법이다.

70년 분단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그 벽을 넘어서야 나눌 수 있는 혈육의 정인 것이다. 이산가족의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돼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 중 매년 4,000여 명이 사망해 6만 6천여 명만이 살아있다.(9월말기준) 이들 생존자 중 53.9%가 80대 이상의 고령자로 분류된다. 매회당 상봉자는 100명 내외인즉 살아있어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턱없이 낮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0차 이산가족상봉행사는 1년 8개월 만에 열렸다.

그날 상봉장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한 어머니(93세)는 아들(72세)을 마주하고서도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1.4후퇴 때 북녘 땅에 두고 온 아들을 60여 년 만에 만났지만 인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야 정신이 돌아온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고 자신의 손가락에 있던 금반지를 빼내 아들에게 건넸다. ‘엄마를 기억하라’는 증표로 삼으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는 헤어지는 순간엔 아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어머니가 아들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 순간엔 반지도 아들도 애타게 찾을 게 분명하다. 그때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통일이 되면, 북녘 땅 고향집에서 같이 살자고 한 손녀의 이야기를 대신 들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칠순 넘은 그 아들 또한 그 때에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약속한 채 북녘 땅으로 떠난 것이다.

기약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6.25동란 당시 그 어머니는 열흘 후를 기약하며 아들을 친정집에 내맡긴 바 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65년만에야 빙빙 에둘러서 아들과 극적으로 상봉한 것이다. 혼자서는 분단의 벽을 넘어설 수가 없어 애태우던 중 66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만난 것이다. 이조차도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 속에 고작 12시간의 만남이 허용되었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한 아버지(98세)는 아들(70세)과 65년 만에 상봉한 이후 130살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아들과 아버지가 각각 100살, 130살까지 살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래야만 살아있는 날 동안 기적처럼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가 있다. 얼굴은 물론이고 체형까지 꼭 빼닮은 부자지간이니, 만나고 또 만나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살날이 족히 30년이 남은 아버지로서는 엄청난 선물을 받은 셈이다. 백수를 누리든 이백수를 누리든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만나서 나눠야 할 정이 분명 따로 있어서다.

그뿐이랴. 유복자로 살아온 한 아들(65세)은 살아있는 아버지와 상봉해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홀어머니와 같이 40여 년간 아버지 제사를 지냈는데, 고인(故人)이 아니었던 것이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제대로 분간 못하고 살았으니, 배은망덕한 자식인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 또한 그런 자식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다만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진 남편을 65년 만에 다시 만난 아내가 안겨준 선물이 핏줄로 맺어진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모두모두 살아줘서 고마운 우리네 가족들이다. 부모형제로 이어지는 혈연관계란 인위적으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천륜(天倫)으로서 누구에게나 마땅히 지키고 살아야 할 도리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으로, 북으로 살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 가족들이다. 핏줄은 닮은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어디서든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이다. 모처럼 마련된 상봉장이 온통 눈물바다로 변했지만, 아직도 분단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이를 뜬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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