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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파고든 물푸레의 깊은 주름36번째 나무-연초 명하 물푸레나무

지난 27일 연초면 명하마을을 찾았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본지 754호에 소개한 마을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장관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은행나무는 여전히 파릇파릇한 머리채를 찰랑거렸다. 그를 둘러싼 논은 이미 추수가 시작됐고, 산천초목은 울긋불긋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지 오랜데 말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은행나무 뒤로 저 멀리 큰 나무가 보였다. 황금들판을 가로지르는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가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무가 나 홀로 서 있다. 참고로 기자는 아직 나무 수종(樹種)에 깊이 알지 못한다.

어쨌든 일단 사진부터 찍고 마을 주민들에게 이 나무의 정체를 묻는 게 순서다. 그런데 날씨가 흐려 좀처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질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나무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며 요리조리 톺아보니, 보면 볼수록 그 생김새에서 지난날의 고달픔이 전해진다.

껍질은 단단하지 않고 매우 무르다. 그 무늬는 어떤 규칙적인 모양이 있다기보다 나무가 비틀어진 대로 갈라졌다. 마치 힘껏 비틀어 물기를 짠 걸레를 그대로 말린 것처럼 깊이 주름졌다. 또 가지마다 듬성듬성 피어난 푸른 이끼는 하얗게 서리가 앉은 아버지들의 귀밑머리를 떠올리게 해 숙연하게 한다. 가지는 굵거나 짧거나 할 것 없이 이리저리 막 뻗어 까치집이 따로 없다.

나무는 마을과 논을 가로지르는 작은 개울가에 뿌리를 내렸다. 안타까운 것은 개울가를 건너는 다리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개울 벽의 모서리에 갇혀 온전한 형태를 감상할 수 없을뿐더러 앞으로 성장이나 건강에도 큰 문제가 있을 거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도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개울과 논 웅덩이를 황금빛으로 적셔 감미로운 가을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 서성이다 보니 지나가던 주민이 귀한 것이니 잘 찍으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김정곤 마을 이장이었다. 김 이장은 이 나무가 '물푸레나무'임을 알려주면서 최소 300년 이상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물푸레나무는 껍질을 물에 담그면 물이 파랗게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질 좋은 가구 목재인 ‘애쉬(ash)’로 더 알려졌다.

김 이장 말로는 이 나무의 가치가 사실 마을 보물까지는 되지 못한다. 약 4년 전에 논을 가로지르는 이 임도를 내었는데 그전에는 논 한복판에 있어 사람이 다가가기 쉽지 않은 나무였다. 길을 낸 뒤로 나무 아래서 쉬는 사람이 늘기는 했으나, 길 한쪽에 비스듬히 서는 바람에 영 볼품이 없어 이장이 거제시에 요청한 보호수 지정에도 거절당하는 신세다.

그런데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 나이다. 현재 전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푸레나무는 경기도 파주시와 화성시에 한 그루씩 있다. 1982년에 먼저 지정한 파주 나무는 당시 추정한 수령이 150살이고, 2006년 지정한 화성 나무는 350살이다. 이들은 각각 그 크기와 지역 문화 및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에 지정됐다.

김 이장 말대로 명하마을의 물푸레나무가 300살 이상이라면, 그 가치는 천연기념물들과 어깨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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