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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스승과 거짓 스승바른정법, 바른인연 (34)
▲ 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스승들을 만난다. 그 중에서도 종교인으로서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우리의 고귀한 인생 자체가 허무하게 무너져 버릴 수 있다.

그래서 보살정법경(菩薩正法經)에서는 말씀하시고 있다.
“어디에서 성인의 바른 법을 설하고 실천하는 훌륭한 스승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정법의 소리를 열심히 듣고 실천하라. 그러한 스승이 있다면 수만리라도 마다 하지 말라. 그리고 교만을 버려라. 부모를 모시듯 깍듯이 예경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원각경(圓覺經)에서는 “참다운 바른 스승을 만나면 절대 사도와 지옥에 떨러질 염려는 없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갈 때에는 발로 스승의 그림자조차도 밟아서는 아니 된다.”고 하시면서 선지식에게 법을 구하는 마음의 자세를 잘 밝히고 있다.

부처님 당시에 제바달다에게도 오백명의 제자가 있었다. 거의가 다 부처님 밑에서 수학하던 제자들이었는데 끈기있게 배우지 못하고, 가짜 스승의 화려한 위장술에 속아 옮겨 가 제바달다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부처님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을 헤아려 했다. 그의 제자중 우두머리가 앙굴리마였는데, 그는 외도를 신봉하는 자기 스승 때문에 구백구십아홉명의 손가락을 잘라 살인마라는 이름을 얻어야 했다. 그처럼 스승의 영향력은 대단히 크고도 중요하다. 스승이 제자를 죽이고 살리는 영악과 칼을 갖고 있다.

거짓 스승들은 항상 자비를 위장한 칼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절대 자비를 내세우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제자들에게 칼을 건네주어 사람들을 죽이라고 부추긴다. 이것은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도 공감한 바 있다.

그들은 악마의 전령들이다. 진리에 입각한 참다운 스승은 길이고 생명이지만 거짓 스승은 미혹이고 죽음 그 자체이다. 거짓 스승들의 특성은 철저히 위장술에 강해서 언제나 그럴 듯하다는 것이다. 그들을 우리는 사이비라고 부른다.

외형적으로 비슷한 것 같지마는 내면적으로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바른 도(正道)의 길을 가지도 않으면서도 바른 길에서 진리를 체득한 것처럼 철저히 위선을 부려 사람들을 현혹한다.

불교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삿됨을 쫒는 범부가 바른 도과(道果)를 증득했다고 선전해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선량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끌어 모아 무더기로 지옥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서 거짓말은 온갖 사람을 괴롭힌다고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실색한 일은 사이비 스승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더 극성을 부린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그들이 환술로 선지식을 능가하는 법술과 위력을 부릴 때도 있기 때문에 바탕이 얕아 기적을 원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순식간에 뺏어버리는 것이다. 일단 그 사슬에 말려들고 나면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그 사도(邪道)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이런 부류의 사이비 스승들은 주로 복 없는 사람들이 쉽게 만나 귀의처로 삼게 된다. 그들의 명리 놀음에 정신이 빼앗겨 평생 박자를 맞추어 주다가 결국엔 재산도 다 빼앗기고, 가정도 다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조사님들께서는 늘 독백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대들이 얼마나 복이 없었으면 나같이 가진 것 없고, 복 없는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만났다는 그 자체가 이미 그대들 인생에 비극중의 상비극이 아닌가? 하루 빨리 복덕을 쌓아 훌륭한 선지식을 스승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라고 경책하신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병들고 볼품없는 거지승에 불과한데, 내 제자들은 내가 보아도 모두 다 똑똑하고 현명한 인텔리들인 것이다. 단지 그들은 스승 복이 없어서 나를 만나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못한 사이비 스승들이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신흥종교를 만들어 그들의 제자들에게 최고의 공경을 받으면서 교주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수행하는 스승을 네 부류로 나누어 그들의 특징을 얘기하고 있다.

첫째는, 부끄러움을 아는 수행자를 말한다.
자기의 도량과 역량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함을 알고 늘 불.조사님과 신도들에게 미안함을 느껴서 항상 정진하고자 노력하는 수행자를 말한다. 그들의 마음은 대단히 결박하기 때문이지만 다만 멈추지 않고 정진하고자 하는 수행력으로 언젠가는 능히 윤회의 괴로움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

둘째는,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이름뿐인 수행자를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제나 뛰어난 화술과 기이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환심속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부처님의 정법과는 정반대의 행동으로 자기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들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차라리 바른 불도를 지키다가 가난 속에서 죽을지언정 바른 수행에서 벗어나 부귀를 누리면서 사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충고하였지마는 그들은 이 경어(經語)에 전혀 개의치 않고 현실에 지극히 만족하며 허세속에서 넉넉하게 살아간다.

셋째는, 벙어리 같은 수행자를 말한다.
지혜도 없고 공부와 수행도 아니하여 바른 설법도 할 줄 모르고, 염불만 배워 의식만 멋지게 집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박복한 사람들에게 복덕을 지을 인연은 만들어 주지만 생사를 반복하면서 영원히 변치 않는 정법(正法)의 생명력은 없다.

넷째는, 참다운 진짜 수행자를 말한다.
계율과 선정, 그리고 지혜를 고루 닦아가면서 대승보살도를 행하는 참 수행자를 말한다. 우리는 이런 분들을 선지식이라고 부른다. 그 분들은 세세에 남을 위해 경전의 가르침을 왜곡되는 일 없이 바르게 설하지마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오직 중생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자 할 뿐이다.

훌륭한 선지식들에게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을 선생자경(善生子經)이나 육방예경(六方禮經)에서는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제자가 바른 스승을 모시는 방법 또한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다섯가지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잘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만이 불교가 힘차게 살아나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 환경보다도 더 급하게 되살려야 되는 것은 바로 부처님 말씀을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정법 불교의 회복이 더 급선무이다.

환경은 육신의 주거지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지만, 불교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더 맑고 바르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하기까지에는 너무나도 깊은 상처들과 슬픈 과정들이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속에 엉키어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600~700여년에 일어난 대승불교는 비록 용수보살에 의해 일대 전기를 맞아 크게 부흥되기는 했어도 초기의 대승불교는 소승권의 수행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핍박과 멸시를 받았는지 모른다.

대승사상을 제창하다 피살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며, 대승경전을 펴려다가 외도라는 낙인으로 몰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였는가?
그러므로 대승권의 불교도들, 특히 우리 불자들이 바르게 공부하고 실천하여 그들의 보살정신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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