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실업자 수가 10년 이래 최고치라고 한다. ‘한 집 건너 백수’라는 말이 호들갑이 아니다. 노동현장에서 땀 흘리는 직장인의 존재감이 빛나는 시대, 그 중심에 대중버스 운전자가 있다.
대중버스 운전자에 대한 인식은 ‘서민의 발’과 ‘도로의 무법자’란 수식어로 치환되어 나타난다. 칭찬과 비난의 접경지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직종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재벌기업의 이유있는 기부 보다 버스기사들의 소소한 미담에서 진한 감동을 경험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버스 애용자가 되었다. 대중교통 이용은 자가운전 보다 좋은 점이 한 두 가지 아니다. 누구나 아는 장점 나열은 차치하고 일단 주차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오늘도 버스를 탔다. 조망권이 확보되는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가는 중, 시선에 특이한 모습이 잡혔다. 오른손을 핸들에 왼손을 폰에 둔 운전자의 모습이다.

창가에 폰 거치대가 설치된 버스는 처음 보았다. 그의 왼손은 운행 중 핸들을 잡았다가 신호대기 정차 시나 정류장 멈춤 시 폰으로 이동했다. 엄지 검지 움직임이 그야말로 빛의 속도였다.
처음에는 업무와 관련된 정보교환 쯤으로 여겼는데, 시간이 가면서 의구심이 들었다. 운전 중 휴대전화 이용 시 적발되면 범칙금이 부과되고, 사고가 잦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된다. 그렇다면 ‘운행 중’과 ‘휴대폰 업무’는 어불성설이다. 나는 고개를 빼 그쪽을 기웃거렸다.

추측이 맞았다. 칸막이 너머로 카톡화면이 보였고, 이미티콘이 문자와 함께 찍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중교통 운전석에 칸막이 설치 법적 의무화가 시행된 지도 꽤 지났다. 음주자나 사회 불만자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등 운전자의 피해가 속출하자 보호칸막이로 예방을 꾀한 것이다. 굿 아이디어였다.

문제의 운전자에게 그 보호막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무(公務)의 공간에서 사무(私務)를 봐도 들키지 않게 막아주는 펜스 개념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판단은 빗나갔다. 그 불편한 진실을 뒷좌석 승객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이 승객은 당신의 숙련된 문자치기 솜씨에서 전력을 의심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직업을 욕망한다. 사회적 역할 분담 및 자아의 실현을 우선순위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직장인 일반은 밥벌이가 목적이다. 특히 운전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은 도로 위의 산업현장이 밥벌이의 덫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덫은 사고의 덫이 되므로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산업현장의 안전은 본인 스스로 안전수칙을 준수할 때 보장받는다. 그는 자신의 산업현장에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직업의식은 크게 생계지향적 직업의식과 소명적 직업의식으로 대별된다. 전자는 오직 돈벌이 목적이 우선순위일 것이고, 후자는 일의 가치와 책임감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다.
이 관점으로 그 운전자의 직업의식을 유추해 본다면 그는 전형적인 생계형 직업의식군(群)에 속한다. 근무 중 사적인 용무를 보았다는 것은 책임감 결려를 나타내고, 그 바람에 승객들은 운전자의 관심으로부터 방치되었다. 승객은 낸 요금만큼 안전한 버스를 탈 권리가 있고, 권리는 운전자에 대한 믿음 안에서 존재한다. 버스 내(內) ‘운행 중 카톡’을 고지한다면 그 버스를 믿고 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에게 규정상 어긋난 행동을 문제 삼는다면, 편리하고 재미있는 카톡언어의 합리성으로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설득력 없는 대답은 공분을 초래하므로 ‘절대 그런 일없다’라고 발뺌할 터. 인명경시로 해석되는 이 경우와 반대되는 소명적 직업의식의 일화가 있다.

어느 해 겨울, 귀가가 늦은 가장을 찾아 시모(媤母)는 어둔 마을 고샅을 더듬어 내려갔다. 빈 자전거가 세워진 근처를 살폈더니 자전거 주인이 언덕 아래 폭설에 묻혀 비몽사몽 상태였다. 연락받고 달려온 119 대원, 그들은 고령의 노인을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가족처럼 정성을 다했다. 재빠른 응급구조 덕분에 동사를 면했는데, 그날의 심야 기온은 영하 10도 안팎이었다. 그 소방관의 직업의식은 두고두고 우리가족에 회자되고 있다.

직업의식의 이타주의는 개인 뿐 아니라 구성원의 지위를 더 돋보이게 한다. 자부심의 요소는 타인의 삶을 개선해 주는 헌신으로 이해되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빛을 발할 때 구성원의 사회적 인식도 덩달아 높아지게 된다.

대중버스 운행자들이 ‘서민의 발’로 인식되는 것은 운전자들의 몫이다. 그 과정에지난한 고충이 따른다는 것쯤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유없이 버스운전자를 폭행하는 사이코 외, 모든 시민들은 그들에게 감사와 격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도 그 중 1인이다.이 글을 고발차원으로 쓰지 않았다. 오직 대중버스 운전자들은 서민의 발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운행 중 폰 사용 절대 불가’ 실천에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거제 外 지역에서의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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