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 사용하는 격언 중에 ‘의식동원(醫食同原)’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음식은 본디 뿌리가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상 덕분인지 우리나라의 음식 중에는 유독 보양식이 많다. 흔하게 접하는 단순한 반찬 하나하나에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예컨대, 기름진 고기를 싸 먹는 깻잎은 섬유질이 풍부할 뿐 아니라 소화흡수를 도와주는 작용이 있고, 우골을 고아서 만든 설렁탕은 노인이나 허약한 체질의 사람들에게 골수의 기운을 보충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네 음식문화 중에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무더운 여름날 푹푹 찐 삼계탕을 먹는 것이다. 가뜩이나 더워서 곤욕인데 왜 그 뜨거운 삼계탕을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까지 챙겨서 먹는 것일까? 그것도 초복, 중복, 말복까지 나누어서 말이다. 흔히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해서 더위는 더위로 이겨내야 된다고들 말하곤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체표순환과 내장 순환

우리 몸의 기능이 효율적으로 수행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온, pH, 삼투압이나 각종 생화학 성분 등 몸 내부의 환경이 항상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을 항상성이라고 한다. 인간은 항상성 유지를 위하여 사시사철 변화하는 외부의 기온에 맞추어 체온을 조절해 나간다. 여름이 오고 주위의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인체 내부의 온도 또한 올라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체온을 식혀서 적정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이 때 인체가 대응하는 방식은 체표로의 혈액 흐름을 늘리는 것이다. 몸 겉부분으로 피를 많이 몰아 놓으면 체내의 열을 발산하기가 쉬워지고, 땀을 흘리기 용이한 환경이 되어서 무더위 속에서도 체내의 적정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겨울에는 모공과 모세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액을 몸 깊은 쪽으로 더 많이 흐르게 함으로써 체온의 소실을 최소화 시킨다.

그런데 인체의 혈액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쪽으로 혈액이 집중되다 보면 당연하게도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혈액이 부족한 상태가 된다. 여름철의 경우 몸의 겉쪽으로 혈액이 몰려 있다 보니 내장쪽의 혈액순환이 저하되어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이것을 ‘속이 허해진다, 냉해진다’고 표현한다. 물론, 실제로 장의 온도가 내려가서 차가워진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추울 때 웅크리고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처럼 장기가 원활한 기능을 못하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여름날 땀을 너무 흘리고 기력 소모가 심하다 보면, 몸에 기운이 없고 입맛이 뚝 떨어지는 소위 ‘더위 먹은’ 증상이 초래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차가운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등을 찾게 되는데, 차가운 물질이 장 속으로 들어오면 장 주변의 혈관이 더욱 수축하여, 들어온 음식물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설사나 소화불량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여름에 뜨거운 삼계탕을 먹는 음식문화에는 속을 따뜻하게 하여 저하된 내장순환을 활성화시킨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여름에는 생맥산

몇 년 전쯤 공중파 TV에서 생맥산의 효능에 대해서 잘 다룬 적이 있다. 생맥산(生脈散)은 맥문동, 인삼, 오미자를 달여서 물 대신 마시는 여름철 대표한약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사람의 기(氣)를 도우며 심장의 열을 내리게 하고 폐를 깨끗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처방은 강심작용을 하는 동시에 체액을 공급하는 작용이 있다고 알려진 약재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장 순환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더위에 지친 장기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복무열통 두무냉통(腹無熱通 頭無冷通)

옛 말에 ‘배는 따뜻하게 해서 아플 일 없고, 머리는 시원하게 해서 아플 일 없다’고 했다.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해. 시원한 냉수와 맥주 한 잔도 좋지만, 사시사철에 맞추어 양생법과 음식을 조절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아 여름철 속이 너무 허해지지 않도록 따뜻하게 유지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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