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 집을 그리워하고, 밥을 떠나 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뭉뚱그린 ‘집밥’이 등극하면서 대세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먹방, 쿡방이 유행처럼 번져나 집밥의 가치가 한결 높아졌음도 간과할 수가 없다. 이를 지켜 본 필자는 걸쭉한 입담 속에 담긴 ‘백선생’의 요리 비법을 전수 받으려 곧잘 ‘따라하기’를 한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익숙한 몸놀림이 순간순간 이어질 때마다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그것이 요리의 진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쉬운 것 같아서다.

그렇듯이 ‘백선생’은 주로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음식을 선보인다. 딱히 계량저울도 없이 종이컵 하나로도 가능한 요리이다. 간장이든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하나같이 닥지닥지 상표가 붙어있다. 집에서 만든 장류(醬類)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밥’의 향수를 묘하게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런 그를 보면 친근함이 느껴져서 좋다. 맛을 감별할 때마다 짓는 코믹한 포즈에 오감(五感)이 감돌기도 한다. 눈대중으로 살짝 간을 맞추고, 허겁지겁 마무리하는 모습은 천상 우리네 시골할머니다. 간간이 설탕을 털어 넣고 맛보기하는 것을 보면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그를 따라 음식을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있다. 10여분 남짓한 즉석요리임에도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달구어진 손맛처럼 맛깔스럽다. 그 맛이 바로 어머니의 품을 떠나면서부터 그리워한 진짜 그 맛(?)임에 놀랍다. 이른바 ‘집’과 ‘밥’의 정서가 한 데 어우러져 ‘집밥’이 즉석으로 재현되는 현실이다. 어디에서든 누구든지 잔반(殘飯)만으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한 끼 식사가 그것이다. 이는 보통사람들의 정서가 듬뿍 담긴 음식이라는 점에서 훈훈할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입맛도 다시 살아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불통과 불신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그나마 소통의 장(場)이 열린 것이다.

집은 가족이 이루는 공동체이고, 가족은 부모·자식·부부 등의 관계로 맺어져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전통사회에서처럼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가 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한집에서 오랫동안 끼니(밥)를 함께 한 식구일지라도 모두 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닌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가족은 식구가 될 수 있으나, 식구는 가족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집밥’은 가족은 물론이고 군식구까지 두루 ‘한 가족’으로 품어주는 마력을 지닌다. ‘집밥’으로 이어지는 온정이 그만큼 따사롭다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집밥’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어머니인 것처럼 집사람, 집안일, 집반찬 등에서의 ‘집’은 으레 여성적인 의미로 풀이된다. 그런데도 요즘의 ‘집밥’은 남자 셰프, ‘백선생’으로 표상되는 가운데 성(性)의 경계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니 여자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주방에서 남자가 당당하게 요리하는 세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날은 혼돈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남자의 자리에 여자가 있고, 여자의 자리에 남자가 있는 것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자리가 서로 바뀌어야 힘이 나는 세상인지, 잠시만 방심해도 제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쿡방’의 주류가 남자 셰프이고, 여자 셰프가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현상으로 보인다. 시대의 흐름 따라 그저 그렇게 변해가는 세상인 것이다. 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니만큼 굳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이렇게 바뀌어야 더 빨리 소통되는 현실임을 직감한다.

이래저래 ‘주부 8단’이란 타이틀을 백선생(백주부)에게 빼앗긴 사람들이 쿡방에 빠져있다.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 듀크족(Dual employ with kids), 나홀로족(1인가구) 등도 마찬가지이다. 저마다 백선생의 제자군단인 듯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다. 그런즉 필자인들 오죽하랴. 그 대열에서 살아남으려면 백선생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펴야 한다. 삶고, 튀기고, 조리고, 무치는 일이 세상사(世上事)와 같아서 먹고 사는 일도 부득불 ‘집밥’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구한 날 ‘쿡방’을 통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요리하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문자답하는 요즘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이른바 ‘웰빙(well-being)’까지는 원하지 않는다. ‘집밥’의 열풍을 통해 입맛을 되찾듯이, 조선업의 장기불황으로 흔들흔들하는 지역 식구들을, 한 가족인 양 따뜻하게 품고 살아가자는 이야기다. 그래야만 침체된 지역 상권도 회복되고, 더불어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다. 이는 ‘집밥’을 그리워하며 오롯이 ‘밥심’으로만 살아가는 우리의 오랜 화두(話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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