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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신문으로 보는 거제1927년 7월 21일 조선일보 1면, 1936년 8월 8일 매일신보 4면

1927년 7월 21일 조선일보 1면

기사제목 - 거제도서 신간회지회, 설립총회 소집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 15일에 사회주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결집해 창립한 항일단체로, 1931년 5월까지 지속한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였다. 신간회는 전국구는 물론 해외 지부까지 영역을 넓혔으며, 회원 수가 3~4만여 명 사이에 이르렀던 대규모 단체였다.

거제 지역에서도 신간회 창립대회 이후 신간회 거제지회를 결성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일제의 탄압에 의해 설립이 미뤄졌다.

1927년 7월 14일 조선일보 1면 기사를 보면 거제신간회는 같은 해 5월 17일 발기대회 후 창립을 앞두고 중심인물인 옥산(玉山) 씨를 소환해 조사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927년 8월 5일 조선일보 1면엔 신간회거제지회의 설립대회 경과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앞서 신문 기사에 게재된 8월 1일이 아닌 하루 뒤인 8월 2일 이운청년회관에서 설립대회를 연 것으로 나타났다.

신간회거제지회 설립대회 당시 임원은 회장 이정(李楨), 부회장 윤사인(尹士仁), 서무부 총간 옥산(玉山), 간사 이주근(李柱勤), 손도상(孫道相), 정치문화부 총간 김광(金光), 상무간사 김순남(金順南), 지명(池明), 황명노(黃命老), 조사연구부총간 김성(金聲), 상무간사 진홍기(陳洪基), 최봉근(崔鳳根), 선전부총간 김일(金一), 상무간사 주인찬(朱仁贊), 윤열(尹烈) 등이다.

1936년 8월 8일 매일신보 4면

기사제목 - 南海岸(남해안)의 長承浦港(장승포항) 修築落成式盛大(수축낙성식성대)/ 屈指良港(굴지량포)의 偉觀燦然(위관찬연)

장승포항수축공사 낙성식이 5일 오전 11시부터 방파제 기부매축지회장에서 士師 경남지사대리 高 내무부장 이하 관민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장엄성대히 거행됐다.

해당 공사는 총공비 12만원을 들여 지난 소화(昭和) 10년 12월 기공해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돼 최근 동방파제 90m, 서방파제 190m가 만들어졌다. - 이하 생략 -

기사에 나오는 소화(昭和)는 서기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 연호(年號)로 부왜(附倭) 성향이 짙은 매일신보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장승포항은 1889년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 이후 일본 입좌촌 어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뤄 살며 한때 거제 지역 최고의 부촌을 이뤘다.

장승포항은 1930년에는 방파제를 쌓고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했는데 기사가 게재된 시기에 수축 공사를 마쳤고, 이후 1962∼1976년 사이에 방파제 복구와 준설공사를 통해 동방파제를 145m까지 연장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원문 번역 - 신간회거제지회를 설립하고자 수개월 이래로 노력, 발기회에서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오는 8월 1일 오전 11시부터 이운청년회관에서 지회설립대회를 소집한다는데 방청객도 다수 내참하기를 바란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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