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문석 /한국시인협회 회원

ㅇ형.
어릴적에 고향에서 그려지던 삽화가 생각납니다. 마을 초입(初入)에 나타나는 초막(草幕)이 있었던 기억입니다. 상여(喪輿)집이었습니다. 마을의 공동재산이었던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대대로 이어온 관습이었을 것입니다.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상여는 그림이 화려했으며 가마 같은 모양새로 기억됩니다. 초상(初喪)이 나면 마을에서 운영되던 두레계 회원들이 모여 내 일처럼 일을 치러내던 모습들이 생생합니다.
이웃집 초상은 상을 당한 집의 지붕 위에 올려진 흰 옷을 보고 알게 됩니다. 먼저 본 마을 주민의 사발통문(沙鉢通文)처럼 이웃과 이웃끼리 기별(奇別)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같이 슬퍼하며 상(喪)을 함께 치렀던 것입니다.

나무 상여는 60년대 초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꽃상여로 퇴락의 길을 걸었고 70년대 초에 완전히 사라졌지요.

ㅇ형.
그때 꽃상여는 주로 절에서 만들어 초상집으로 운반되었지요. 나무 상여는 무거워서 10명이 상여를 메고 망자의 유택(幽宅)까지 갔지요. 꽃상여는 6명이나 8명으로 운구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저도 70년대 고향방문 길에 꽃상여를 운구(運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꽃상여도 사라지고 운구차가 대세지요.

상여 앞소리를 하는 앞소리꾼은 유난히 목소리가 좋아서 더욱 슬픔에 젖게도 했지요. 요령을 흔들면서 "북망산이 머다더니 저 건너 안산이 북망산이네"라고 앞소리를 하면 상여꾼은 후렴으로 "어허이 어허, 어허 넘차. 관살세음 보살 나무아비타불"하면서 행렬이 이어졌지요.

당시 앞소리를 잘하던 분은 경문장이 신찬승과 농사군 이종섭이라는 분이 구성지게 부르던 광경이 선합니다.
이때 맏상제(주)는 굴건(屈巾)제복을 했지요. 가족들은 흰옷을 입었던 것 같은데, 우리민족은 흰옷을 중요시해서 백의 민족이라고 했지요. 전통양식은 장례식에도 흰옷을 입었지요. 사극에서 많이 접하기도 하지요. 50년대까지 시골에서는 이 풍습이 면면이 이어졌지요.

ㅇ형.
이 풍습이 서서히 사라지게 된 것은 일제에 의해서입니다. 중앙일보(2015/4/4)에서 참고한 내용입니다. 이미 1934년 조선총독부가 의레준칙으로 관혼상제 예법을 개선한다며 싹 바꿔버렸지요.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생활양식 가운데 각종 의례는 구태가 의연하여 오히려 개선할 여지가 적지 않다. 그중에 혼인 장례 제사의 형식과 관례는 지나치게 번잡하여 엄숙하여야 할 의례도 종종 자질구레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마음을 쓰게 되어 그 정신을 망각할까 우려될 정도에 이르렀다. 지금에 와서 이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민중의 피해를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방의 발전과 국력의 신장(伸張)을 저해하는 일이 실로 적지 않을 것이다."

조선은 유교국으로서 예를 우주의 질서로 생각했고, 예를 표현하는 방법이라며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이럼에도 일제는 조선의 전통의례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번잡하다고 여겨 개혁의 메스를 들이댄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라 눈에 띄게 변한 것이 건상복(巾喪服)입니다. 굴건제복을 생략하고 두건과 두루마기를 유족이 입도록 한 것입니다. 유족은 한복이나 일본 전통복장을 입었을 때 왼쪽 가슴에 나비모양의 검은 리본을 달도록 했다고 합니다. 양복을 입었을 때는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달게 했다고 합니다. 일제가 강요한 상장과 완장은 항일 인사들이 장례식에 모여 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럼에도 시골이나 산촌에서는 우리 본래 풍습이 그대로 이어져 왔지요. 장례는 전에는 7일장, 5일장이었으나 요즈음은 3일장이 대세네요. 초장을 지내고는 3년상, 1년상도 있어서 집안 청마루에 상막을 차려놓고 아침, 점심, 저녁 삼시세끼를 상막에다 밥을 차려놓는 것을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풍습은 다 소멸되고 그나마 남았던 삼제도 장례 당일에 다 치러내지요. 풍습도 세월과 문화의 흐름 따라 변천되는 것이지요.

ㅇ형.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 삼베로 만든 상장을 가슴에 달도록했지요. 2009년 건전가정의례준칙에도 상장조항은 있지만 완장조항은 없다고 합니다. 이 완장문화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이제는 계급화 되었더군요. 완장 문화가 극성을 부리던 때는 6.25전쟁 무렵일 것입니다. 당시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여 남으로 내려오면서 머슴이나 하층민에게 완장을 채워 그들의 추종세력으로 만들었지요. 완장하면 치를 떠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이 정체 불명의 완장문화가 5공 이후로 소멸되었는데, 장레문화에서 성행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Irony)합니다. 없어져야 할 문화인 것입니다. 넉줄은 맏상주, 석줄은 나머지 아들, 두줄은 사위, 한줄은 손자, 형제인 것입니다. 이것도 일본의 영향이 아닌지?

이것을 전통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헌화나 화환문화는 서양문화라 치더라도 장례식의 꽃장식은 일본문화라고 합니다. 꽃장식은 배척할 것은 아니겠지요. 꽃문화,장례식장의 꽃은 우리 전통은 아니지만 이미 이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죠. 해마다 장례지도사(?)들이 일본에 가서 장례식 꽃문화의 변화를 배워온다고 합니다. 문제는 화환문화인데, 이것을 과시용으로 활용하는 풍습은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심지어는 화환의 수로 가치를 재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화환 이전에는 만장(晩章)이 상여 뒤를 따랐지요.

이때 만장의 수로 고인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기도 했지요. 여기서 유래된 것인지? 장례식을 옛사람들은 슬픔으로만 채우지는 않았습니다. 그 흔적을 진도 다시래기 놀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발인 전날 하는 빈상여놀이입니다. 블랙코미디도 연출되고, 원색적인 사설도 주고 받으면 슬픔에 젖었던 상주도 웃고 만다고 합니다.

이런 언밸런스(unbalance)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한국인의 샤머니즘(shamanism)적 자유분방함에서 연출된다고 최준식은 풀이합니다.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한국인의 기질 탓이겠지요.

ㅇ형.
신문 광고를 보면 ‘윤달에 삼베수의 한벌 장만하면 효자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삼베 수의도 일제의 잔재라는 것입니다. 원래 조선시대에는 부자집은 명주나 비단이 수의였으며, 일반 백성들은 망자가 생전에 즐겨 입던 옷을 입혀 염습(殮襲)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던 것이 일제가 1934년 펴낸 조선총독부 제정의 ‘의례준칙과 그 해설의 상례’에서 "수의는 포목 등을 쓰고 비단 등 값비싼 것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전쟁으로 물자부족을 채우기 위한 방편이었다고도 합니다. 이런 연유로 삼베가 수의로 대체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대마초니 뭐니 해서 삼을 재배할 수 없지만 5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대마를 심어 삼베를 생산했고, 집집마다 삼베 수의를 마련했지요. 그만큼 삼베가 흔했지요. 저희 세대는 삼베옷을 바지 저고리로 입었던 기억도 선연할 겁니다.

당시에는 삼베, 며엉(목화), 모시, 명주, 이 모든 것들을 자가 생산했지요. 길쌈이 대세였던 세월이었지요. 동짓달 긴긴밤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주앉아 다듬이질 하던 삽화는 명화가 부럽지 않았던 세월이었는데. 정겨운 다듬이 소리도요. 어머니의 베틀노래도요. 긴긴 겨울밤의 할머니의 물레소리도요.
삼베가 장사꾼들에 의해 신주단지처럼 변한 것은 장례업계의 농간인 것입니다. 삼(大麻)을 법적으로 재배할 수 없으니 귀한 탓도 있겠지요. 황금삼베 수의는 무엇인지. 황제 황금삼베수의는 또 무엇인지. 생전에 즐겨 입던 옷으로 염습하는 문화가 일어났으면 합니다. 발굴되는 옛무덤에서 일상복을 입고 있는 시신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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