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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신문으로 보는 거제1927년 7월 13일 매일신보 , 1925년 7월 10일 조선일보

‘근대 신문으로 보는 거제’는 거제문화원 향토사연구소의 <거제관련 신문·잡지기사색인사업 보고서> 내용 가운데 1883년 10월 31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근대 신문과 잡지에 실린 거제지역 관련 기사 중 한글로 번역된 기사를 토대로 구성됩니다.
근대 거제 지역에서 일어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눈에 띄는 사건과 이 시기 주요 인물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현재를 비교해 보려는 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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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7월 13일 매일신보 2면

기사제목 = 田畓流失(전답유실), 堤坊(제방) 決潰(결궤) 농작물의 피해가 적지 않다 진주 남강에는 증수 십삼척 慶南各地水害詳報(경남각지수해상보)

기사원문 = 1927년 7월 9일과 10일 양일간 폭우로 부산지방 수해에 대해 경남도경찰부에 도착된 각지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거제 = 거제에는 전답 유실 27정보, 침수 80정보, 피해정도는 1만 원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는 땅 넓이의 단위를 ‘정보(町步)’로 사용했는데 1정보는 3000평(9917.4㎡)에 해당됐다.

따라서 1927년 7월 9일과 10일 이틀간 내린 비로 논과 밭이 8만 1000평, 기타 침수지역이 2만 4000평, 피해규모는 700억 정도로 추정 할 수 있다.


1925년 7월 10일 조선일보 1면

기사제목 = 거제에 유치원 신설

기사원문 = 둔덕면 술역리 야소교회에서 이번 달 24일 예배당 내에 유치원을 창설했는데, 강사는 평양 유니언 학교 출신 장아지(長牙只·27)이며, 아동은 45명에 달하는데 그 성적이 특히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90년 전 둔덕면 야소교회(예수교회)에 유치원을 설립한 사람은 ‘평양 유니언 학교 출신 장아지’란 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또 기사에서 언급된 평양 유니언 학교는 숭실대학의 전신인 합성숭실대학(당시 교명 ‘Union Christian College’)으로 당시 평양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둔덕면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숭덕초등학교 전교생이 90명, 병설유치원생의 수가 28명인 것을 고려하면 당시 둔덕면의 아동 수는 지금보다 많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 5월 조사된 둔덕면의 인구는 3147명으로, 2015년 6월 현재 3490명과 불과 343명 차이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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