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현대인들은 언제나 바쁘다고 한다. 정신이 없을 정도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허둥대고 있을 뿐이다. 사실 바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과거 전생부터 지겹도록 해 오던 일을 또 다시 금생에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회의 굴레 속에 들어있는 한 새로운 일거리라는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인간이 적어도 지나간 과거의 삶 중에서 삼생(三生) 정도만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또 시작하는 이 삶에 대해 지겨움으로 신물이 날 것이다.

다만 전생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삶이 매일 새롭게 보일 뿐이지. 그것은 전생에 수억만 번도 더 경험해 왔던 것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안목이라는 것이 고작 목욕탕에서 방금 다른 사람이 앉아 때를 밀던 그 좌대가 불결해 보여 한 쪽에 쌓아둔 새 것을 끌어당겨 쓰는 수준 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헌 것이다. 단지 자기 눈으로 그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른 것 보다 우선 깨끗하게 보일 뿐이다. 결국 그들은 시간에 속은 것이다. 그와 같이 이 세상에는 새로운 것들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가옥 밑에는 먼저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의 유골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묻혀져 있다.
그 자리는 엄밀히 말하면 공동묘지 한복판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오직 현재의 공동묘지만 혐오스럽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그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달콤한 사랑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그들은 유골을 땅 밑에 묻히고 그 위에 삶의 터전을 잡아놓고 있다. 조만간 곧 그들도 뒤따라오는 후손들에 의해 자기들의 유골들도 그리 땅에 묻혀 질 것이다. 서로 서로가 그렇게 묻히고, 이 세상을 교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들은 오늘도 죽음의 문턱으로 서로 빨리 도달하려고 서로 떠밀고 밀치고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제 아무리 바쁘게 앞으로 나아가도 자기 집 문지방 하나도 끝내 넘어가지 못하고 다시 그곳으로 지친 몸을 가누며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는 또 내일을 맞이하고 있다.그래서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부처님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긴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고 꼬집으셨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쁠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그것은 보통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도 인간들의 어설픈 두뇌를 회전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박하게 바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눈썹이 타고 있을 때이다. 그때가 되면 생사의 갈림길에서 촌각이 다투어지게 된다. 그러면 이때까지 힘들게 구해온 세속의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린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그 순간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직도 계산적인 궁리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래도 덜 다급할 때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언제나 쓰레기 같은 말만을 입으로 계속 열심히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세상을 불길이 치솟는 하나의 지옥으로 보셨다. 지금 방안 가득히 화마가 덮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우선적으로 챙겨갖고 나가야 하는가?

어리석은 사람들은 귀중품부터 챙기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몸뚱이부터 안전하게 들고 뛰쳐나온다. 그처럼 자기 자신부터 우선 살려야 한다. 그 길은 자신의 마음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 일을 실행하는데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참선과 간경, 염불과 진언으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자세하게 도와주고 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수백억 만 번도 더 익혀 온 중생으로 살아온 삶의 방향을 일시에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된다.

오른 손잡이가 단번에 왼손잡이로 전환해야 하는 것처럼 매우 어색하고 대단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사람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면 매우 불안해한다. 육체적으로 뭔가 움직여야 만이 안정성을 느낀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큼 고역스러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모든 생각과 모든 행위를 놓아버리도록 만드는 참선을 시키면 주리가 뒤틀린다고 한다.

사실이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항상 쉬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쉬라고 하면 그들은 지겨워서 안절부절하며 몸서리친다. 그들은 마음으로 중심을 잡는 기술은 터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눈앞에 객체의 대상이 없으면 미친 듯이 불안해한다.

재미있는 일거리는 몇 시간씩 잘도 하지만 가만히 정지해 있으라고 하면 5분도 못되어 시계를 열 두번도 더 훔쳐본다.
그러나 일단 정확히 방향을 잡고 가속도를 붙이면 무서울 정도로 속도가 빨라진다. 왜냐하면 그 여정은 자기 내면으로 되돌아가는 환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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