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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론’ ‘암탉론’에 대한 반론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등산 중에 비를 만났다. ‘곧 멈추겠지.’ 그러나 한 번 긋고 지나가는 소낙비가 아니라 뭇매 치듯 내리는 궂은비였다. 인적 없는 수림 속에 음습한 안개가 가득 찼다. 위기감에 휩싸여 하산을 서둘렀고 불어난 계곡물을 천신만고 끝에 건너 귀가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발열과 오한증세가 있었으나 미적거린(因) 사이 입원치료가 불가피했을 만큼 기관지염으로 도졌다.(果)

1년 전의 그 인과률이 오늘 뉴스 위에 겹쳐졌다. 우리의 인생은 호모부가(毫毛斧柯)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설마’ 하고 방심하다 자칫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개인서사도 그렇지만 거대서사일 경우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의 실정이 그러하다.
모든 현상은 원인과 결과로 설명되어진다. 어떤 상태(원인)에서 다른 상태(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인과법(A가 B의 원인)으로 ‘메리스’ 파동을 보자.

중동에서 귀국한 1인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 점염병 반입자가 밝혀졌을 시만 해도 심각한 문제로 확산될 줄 몰랐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원인은 시간적으로 결과에 선행하고 결과는 국민의 몫이 되었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국민은 뿔이났다. 분노하고 절망하고, 작년 연장선에서 불편한 감정을 쏟아낸다.
‘며느리 잘못 들여 집안 망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동성(同性)의 입장에서 듣기 민망할 수준의 욕설이 사이버상을 도배하고 있다. 덧붙여 가뭄, 교통사고, 화재, 도난, 살인사고까지 투표 잘못한 결과라고 한다.

내가 입원했던 병실에 자칭 관상쟁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입담 덕분에 무료한 시간을 재미있게 보냈는데, 그 안테나에 내 면상이 잡혔을 때였다.
“얼굴을 보니 무슨 나쁜 일이 생겼군”
“그렇게 보여요?”
“조상 중에 억울한 죽음을 맞은 분이 있죠?”
“조부께서 큰물 진 날 논에 물대려 나갔다가 변을 당한 적이..,” 나는 반세기 전의 일을 상기하며 장단을 맞췄다.
“바로 그거네. 조상님께 정성이 부족 했군”
그녀는 내가 아픈 이유를 조상 탓이라고 했다. 가정의 우환(잡담에 섞였던 선행 정보)도 한 맺힌 조상신 짓이니 ‘치성을 드려야 한다’고 겁을 주었다. 여인의 표정이 수면장애 바이러스가 되어 나를 밤새 괴롭혔다.

그 부정적인 말이 명치끝에 걸렸다. 곁의 환자들은 ‘퇴원하면 교회 다니라’(개신교신자) 둥, ‘기도처에 가서 제를 지내라’(그녀가 안내하는) 둥 거들었다.
기실 여인이 나에게 한 질문(조상 중에 억울한 죽음을 맞은 분 있냐?)은 누구나 경험하는 인생사 보편적인 묘사(Barnum effect)이다. 나는 그 비논리적인 추론에 불길함을 느꼈다. ‘불길함’의 기저는 ‘불안심리’다. ‘당신에게 ~한 일이 닥치게 된다’는 엄포가 심신이 허약해진 환자 입장에서 개인서사를 꿰뚫어 보는 능력으로 보였다. 무속인의 숙련된 눈치작전에 걸려든 것이다.

다행히 이내 그 불온한 음해를 떨쳐낼 수 있었다. 여객선 침몰사고, 전염병 창궐, 이 모두가 다 박○○ ‘팔자 센 탓’이라는, 그녀의 선동적인 ‘팔자타령’ 때문이다. ‘며느리 잘 못 봐 집안 망했다’와 같은 맥락인 그 말투로 인해 나는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원상회복한 셈이다.
한국의 시모들은 대개 자부를 가족보다 종속관계로 여긴다. 며느리 언어는 시모의 고착화된 이념에 닿지 못한다. 이유불문 아들의 여자가 미운 시모의 경우, 미움을 정당화하여 자신의 불안의식을 제거하려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생긴 ‘며늘 잘못 들여...’라는 속설은, 치사한 봉건주의적 잔재이며 전근대적인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갈등상황에 직면했을 방어기제를 쓴다. 원치 않는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발동 현상으로써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 남 탓하는 ‘투사’가 흔히 애용된다. 병실의 여인이나 누리꾼들의 며느리론, 암탉론이 바로 그것이다.
메리스 ‘확산’은 물론 별개로 봐야 한다. 이는 ‘밤낮’의 인과률에 비견하여 해석될 수 없는 성격이다. 밤이 아침에 선행한다고 아침의 원인이 아니지만(자연현상) ‘메리스 잡기’는 정부의 늦장 대응 결과(인재)이기에 책임회피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인과관계는 상호연관이라는 법칙의 한 요소다.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이 열리고, 수박씨를 심으면 수박이 열린다. 신경숙의 대중적 몰매는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은 결과이지 문제를 공론화한 측의 탓이 아니고, 나의 기관지염은 일기예보 무시하고 떠한 등산 탓이지 하늘 탓이 아니다. 모든 일은 필연적인 인과성에 의해 결론이 돌출한다.
민주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권리다. 시대의 불행, 개인의 아픔을 ‘며느리 탓’ 컨셉보다 논리적 개진으로 주제를 살릴 때 설득력이 높지 않을까.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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