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거제 치안 이대로 좋은가? <글 싣는 순서> ㆍ진단, 거제 경찰 '만성피로' 상태 ☞르포, 신현지구대서 '불금' 지새우다 ㆍ공론, 치안수요 증가 대처 방안은?

“기자님들도 좀 드세요.”
“괜찮습니다. 저희는 따라다니기만 할 건데요 뭐.”

권유에 못 이겨 닭다리 하나씩 뜯었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야식에 눈독 들이는 불청객이 될 순 없었다. 고현동 신현지구대(대장 원준희) 야간 근무자들은 밤 10~11시 사이 이렇게 야식을 먹는다. 고현의 밤은 생각보다 사나워 체력을 충분히 채워둬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일주일 중 사건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금요일에 신현지구대에서 밤을 지새웠다. 관할구역 인구 대비 경찰 인력이 거제는 물론 경남에서조차 가장 부족하다고 알려진 신현지구대의 업무 강도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곳 ‘지역경찰(파출소·지구대·치안센터 근무 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기로 했다.

6월 현재 신현지구대 현원은 총 29명이다. 지구대장과 직원 1명이 관리반이고, 27명은 9명씩 한 팀을 꾸려 순찰 3개 팀이 주간·야간·비번 3교대로 근무한다. 순찰 한 팀이 주간 3일, 야간·비번 3일씩 총 9일 주기로 근무하는 방식이다. 이날은 이 인원에 중앙경찰학교 신입 순경 9명이 실습 나와 근무를 보조하고 있었다.

신현지구대 담당 지역은 고현동과 상문동, 수월동이다. 5월 말 기준 총인구는 8만 8777명. 지구대 직원 한 명이 맡아야 할 치안 인구가 3000명이 넘는 셈이다. 또 이 구역 안에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28곳, 마트 같은 현금다액취급소가 79곳, 그리고 청소년유해업소로 분류된 유흥주점 등이 3220곳이나 된다.

이처럼 고현은 유흥업소가 몰려있어 양대조선소의 월급날이나 금·토요일 밤은 그야말로 불야성(不夜城)을 이룬다. 이런 날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마신 술’과 한판 씨름을 벌여야 한다. 긴장하지 않으면 자칫 치안에 구멍이 뚫린다.

사람만큼 제각각인 사연들
밤 10시 신현지구대를 방문하니 이미 지구대 소파는 한 취객의 안방이 돼 있었다. 저녁 8시쯤 신고가 접수돼 직원들이 직접 업고 왔다고 했다. 술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는 소파에 누운 채로 소변을 흘렸다. 이런 일이 다반사란다.

이날은 중앙경찰학교 실습생을 포함해 12명이 야간근무를 섰다. 저녁 6시 반 석회(夕會·저녁 모임)부터 다음 날 아침 8시 반 조회(朝會)까지 14시간 근무다.

기자가 동행한 첫 출동은 10시 반쯤이었다. 고현버스터미널에서 취객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것.

직원 두 명이 순찰차 앞에 타고 기자는 뒷좌석에 탔다. 좌석 시트는 비닐이었다. 취객을 태우면 구토에 침 뱉는 건 예사고 대소변을 지려 치우기 편하게 비닐로 제작됐다고 했다.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에는 투명한 격벽이 있다. 차내 난동을 막기 위한 것인데 여기저기 긁히고 발로 찬 흔적이 지난 참상을 상상케 했다.

또 뒷좌석은 창문을 내리는 버튼도, 문을 여는 손잡이도 없다. 그야말로 여기 타는 순간 격리된다. 이날 기자들은 동행한 직원이 출동 때마다 뒷문을 열어줘야 해 적잖이 폐를 끼쳤다.

터미널에 도착해 신고자를 찾아 취객을 확인했다. 그는 밤 12시발 서울행 버스를 타야 했는데 미리 와보니 더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의 좌석이 비어있어 표를 바꾸길 원했다. 그러나 버스 측에선 이미 고현에서 태워야 할 정원이 다 찼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이 취객은 그 말을 이해 못 해 난동을 부렸고 경찰까지 출동한 것이다. 사람 수 만큼이나 사연이 가지각색이고, 가장 가까운 데서 이를 처리하는 존재가 경찰이었다.

소동이 마무리되자 신고자를 다시 찾아 안심시킨 뒤 철수했다. 최근에 치안서비스가 강조되면서 사건 처리 후 신고자에게 어떻게 해결했는지 안내하고 안심시켜야 한다. 신고자가 신고만 하고 현장을 떠나면 그만큼 일이 늦어진다.

격무보다 무서운 거제 살이
지구대에 복귀하고 나서는 순찰에 따라나섰다. 술집, 음식점이 집중된 ‘엠파크(*현 씨네세븐 건물의 옛 이름으로 아직 그 일대를 지칭하고 있다)’를 중심으로 일대를 도보 순찰했다.

술집 뒷골목에서 단체로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을 귀가 조처하고,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을 택시 태워 보내기도 했다. 일반 시민일 때는 평범한 일상이 경찰의 시각에서는 언제든지 사건사고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도보 순찰을 끝내고 순찰차로 고현동과 상문동, 수월동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면서 신현지구대의 형편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신현지구대는 신입 경찰들 사이에서 기피 지역이 아니다. 오히려 사건사고가 많은 만큼 단기간에 실적을 올릴 수 있어 선호지역으로 뽑힌다. 그러나 막상 거제에 와보면 업무보다 일상생활이 힘들다. 물가는 물론이고 집값도, 월세도 비싸다. 미혼자는 월세 부담을 줄이려 동료와 합숙하기도 하고, 기혼자 중에는 통영에 가정을 두고 출퇴근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연차를 채우면 다른 도시로 떠나기 일쑤다. 인력이 단기간에 교체되다 보니 지역 사정에 밝은 직원이 적은 것은 취약점으로 보였다.

고현의 밤은 술과의 전쟁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주거지역은 고요한 밤을 맞았다. 행인도 줄고 도로도 한산했다. 그러다 무전이 정적을 깨뜨렸다. 고현 모 노래방에서 손님들끼리 폭행이 벌어졌다는 것.

고현 시내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노래방 현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유리 파편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총출동한 지구대 경찰들이 엉겨 붙은 취객들을 뜯어말리고 있었다. 이 와중에 한 남성은 현장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소동이 일단락되자 즉시 다른 현장으로 출동했다. 수월동에서 절도사건이 발생했다. 영업이 끝난 한 식당에 괴한이 침입해 이를 주인이 발견하고 신고한 것이다. 이날 현장에서 범인을 잡지 못했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으나, 신고자는 잔뜩 겁에 질렸다. 이를 안심시키고 현장을 보존해 감식반에 사건을 인계하는 것도 지역경찰의 역할이었다.

한밤의 추격전을 끝내고 지구대에 와보니 아까 연행된 취객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뒤로 채워진 수갑 때문에 아프다며 풀어달라고 호소하다가 갑자기 귀청이 떨어져라 큰소리로 욕지거리를 퍼붓기를 되풀이했다. 그의 일행은 잘 아는 검사(檢事)가 있다며 당장 풀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일행은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다 3시쯤 거제경찰서 조사관(형사)이 연행해 갔다. 술김의 실수로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됐다.

다른 한쪽에선 중년 남자가 횡설수설했다. 자기가 누구 때문에 피해를 봤다면서 당장 상대방을 잡아오라는 것. 그전에는 절대 집에 갈 수 없다면서도 집으로 빨리 보내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이번에는 부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술을 마시고 도로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차량이 이들을 스쳤다. 그래서 붙잡고는 또 시비가 일어난 것이다.

옆에서는 부부싸움이 났다. 부인이 자기 아이를 때린 것이 원인이었다. 사태가 진정되나 싶더니 나중엔 서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담당 직원은 이들을 진정시키느라 한 바가지 땀을 빼야 했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섰다. 원래 야간근무에는 두 명씩 두 시간을 쉰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은 그러지 못했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밤이 지나고 거짓말처럼 고요하게 먼동이 텄다. 이때는 간밤의 사건들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직원들은 현장에서 급하게 메모했던 것을 서로 맞추며 사건일지를 작성한다.

그러나 직원들은 아직 안심하지 말란다. 새벽 5~6시도 절정이란다. 한밤이 직장인들의 시간이었다면 이른 아침은 혈기왕성한 10~20대의 귀가시간이다.

역시나 전화와 무전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집단 난투극이 잇따라 접수됐다. 거제시체육관 쪽에서 난 폭행 시비는 금세 마무리됐고, 버스터미널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은 한참 걸렸다. 한 무리가 다른 무리를 폭행하고 달아나 경찰이 쫓고 있다고 했다.

이윽고 지구대에 들어선 그들은 고3 나이인 19살 청소년들과 20대 초반 청년들이었다. 20대 청년들이 맞았다고 주장하고, 청소년들은 그런 적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비를 가리는 사이 일행은 불어나 또다시 지구대가 술렁였다.

어느덧 6시가 돼서야 기자들은 철수했다. 간밤의 사건사고 신고는 모두 64건. 중복 신고를 추려보니 38건이다. 14시간 동안 시간당 3건 가까이 발생했으며, 한 명당 5건 이상의 신고를 받은 셈이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자 피로가 몰려왔다. 눈은 감기고 목이 잠겼다. 그 와중에 허기가 닥쳤다. 지난밤 통닭이 간절히 생각난 아침이었다.

이동열 조행성 기자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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