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결혼식을 치룬 후 지심도에 있는 분교를 한번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에 장승포 선착장을 찾았다. 그곳은 언제나 힘찬 그물에 건져진 생선들로 살아 숨 쉬는 치열한 삶이 느껴진다. 원색의 옷차림들로 왁지글거리는 매표소는 이미 표가 매진된 상태다. 다행히 사전에 예약을 했기에 배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심도를 찾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25년 전 그때는 남편과 함께 연년생 두 아이 등 온 가족이 함께 찾은 지심도 이었지만 오늘은 혼자서 지심도행 배를 타게 되었다. 부유하는 듯 점점이 멀어지는 배는 부두를 멀리하고 거제도의 작은 산중의 하나인 지심도를 점차로 가까이 했다.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불어오는 해풍 속에 예전의 추억이 어제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당시 소형 어선을 개조해서 만든 발동선을 타고 지심도에 첫발을 내딛자 깎아지른 절벽 아래 포말을 일으키며 시퍼렇게 부서지는 파도는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절박감마저 감돌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의 그 분교를 찾아가는 길인 언덕길을 오르니 동백림의 숲길이 펼쳐진다. 이미 만개한 동백은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동백꽃을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 한창 만개의 순간 미련 없이 자리를 비워주는 모습이다. 머물 때와 떠날 때를 구별 못하고 권력에 연연하는 이 세상에 던지는 붉디붉은 봄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나 할까?
동백 숲을 지나니 하늘로 쭉쭉 뻗어가는 대나무 숲이 나타나고 숲길이 끝나자 전망대가 나타난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은 지심도 바다를 내려다보며 감탄을 자아낸다. 말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전망대를 돌아서 언덕길을 오르니 25년 전 그 추억의 분교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만개한 동백꽃과 벚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었던 동백을 찾아보았다. 예전의 그 동백이 그 자리에서 양팔로 가까스로 싸안을 정도의 거목으로 자라있었다. 거목은 오랜 영욕의 세월을 말없이 보듬은 채 수백 개의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보지 못했던 벚꽃들이 불어오는 미풍에 하염없이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변하지 않은 것은 거목이된 동백 뿐 분교 운동장의 모습도 많이 변해 있었다.

그 당시 초미니 분교에서 꿈나무들을 가르치며 가지를 다듬었을 벽지 교사의 결고운 정회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관광객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만 내 귀를 울린다.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진 학교는 폐교로 형태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문득 흔적도 없는 땅으로 변해버린 운동장 한쪽에 앙증스러운 미니연못의 기억을 쫒았다. 자연시간의 실습장이기도 했을 붕어 서너 마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던 그 연못을.

사위를 둘러싼 바다가 삶 그 자체인 섬 아이들과 선생님이 바다에서 주웠을 조개며 소라를 한 개씩 퐁당퐁당 던져 넣고 만들었을 사제 간의 정감넘치던 소담스런 자연 못도 이제는 내 추억속의 연못으로 남게 되었다.
섬 특유의 붉은색을 띤 운동장 한쪽에는 옹니박힌 나무의자가 동백림을 차양으로 서너 개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 앉으니 약간의 피로가 저절로 풀리며 지심도의 훈풍 속에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25년 전 두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살 세 살 연년생 두 아이는 위험 물질이 전혀 없는 촉감 좋은 맨 땅위를 뒤뚱거리며 즐거워했었다. 큰 바구니 한가득 장난감엔 이내 싫증을 내면서 지심도의 흙바닥 위에선 좀체 싫증을 낼 줄 몰랐다. 여고시절 손을 데었을 때 어머니께서는 연탄재와 흙을 섞어서 그 부위에 바른 후 가제로 처매 주시며 곧 화기가 빠진다고 했을 때 난 엉터리 요법이라고 앙탈을 부렸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손의 화끈한 쓰라림이 이내 가시고 다음날 풀어보면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래서 어머니의 그 처방 아닌 의식에 사뭇 감동으로 숙연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흙의 꿋꿋함에 감염되어 치유되길 빌었을 그 신성한 모성애. 늘 접하는 아파트 생활이란 게 땅이라곤 놀이터의 모래뿐인데 그곳은 생명력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체질이 아닌가? 어머니께서 나에게 전수하신 흙의 생산성이 대물림됨으로써 이 섬의 질박함이 내 아이에게로 옮아 붙기를 기원하였었다.
분교 뒤쪽으로 내려가니 허술한 슬레이트 관사였을 마당에는 땅속으로 연결된 고무호스를 타고 옥수(玉水)가 옹달물통에 철철 넘치고 있었다. 마음의 청신함을 위하여 한 모금 들이켰다. 그때 ‘또르르 또르르’ 풀숲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음색의 새 소리는 섬 전체를 팔색조의 신비로움에 휩싸이게 하였다.

2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어엿한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아들은 어린 시절 지심도의 추억을 알기나 할까. 저의 둥지로 떠난 아들에 대한 허전함을 달래보고 싶어 찾은 지심도행이었다. 더불어 25년 전 어머니의 마음처럼 위험물질이 전혀 없는 지심도의 땅처럼 지켜주며 키워낸 아들이 언제나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염원해 보았다.

오염 없는 원시적인 형상 그대로를 간직한 지심도의 추억의 책갈피를 덮으며 세상의 아들들의 삶이 범상함 속에 이타적이길 바라며 수평선 물마루 위로 멀어져 가는 섬을 뒤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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