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서 밥값 내달라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낸 세금의 권리를 찾자는 겁니다.”

14일 오전 장승포초등학교 돌봄교실에 학부모 9명이 모였다. 이 학교 학생들의 엄마들인데 서울말을 쓰기도 하고, 경상도 사투리에 경북 억양이 묻어나기도 했다. 남편따라, 직장따라 여러 사정으로 살던 곳을 떠나 거제에 정착한 엄마들. 낯선 땅 거제도에 이제야 정을 붙이는가 싶더니 돌연 하나같이 떠나고 싶단다. 학교 무상급식 중단 때문이다.

지난 6일 지역 초등학교 학부모와 시민단체 70여 명이 빗속에서 벌인 ‘학교 무상급식 지원 중단 철회 및 서민자녀 교육지원 조례 제정 반대’ 시위는 나흘 뒤인 10일 1000명(주최 측 추산) 집회로 번졌다. 보통 개인이나 단체, 마을별로 농성을 벌이던 시위 양상이 자녀 문제에서만큼은 적잖은 시민이 한마음이 돼 거제시청에 모인 것이다.

이 가운데 장승포초 학부모들은 ‘장승포초 의무급식지키기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정영지/ 이하 비대위)’를 꾸려 거제에서 가장 일찍 학교 단위의 조직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경남 내 타 지역보다 한발 늦은 감이 있어 더욱 분발하는 모습이다.

비대위의 주장은 국민으로서 권리를 찾자는 것이다. 학부모 A씨는 “거제는 양대조선소가 있어 평균 가계소득이 높다고 알려졌다. 그만큼 물가가 높아 세금도 적지 않게 내고 있다. 또 한 가정에 애기 하나 잘 키우자는 요즘 추세에 불구하고 거제는 출산율이 높다. 그러면 어느 정도 행정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무상급식 중단) 진행되는 데 있어서 우리 권리를 분명하게 찾자는 게 비대위의 주장이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B씨는 경남도가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고 새로 도입하는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에 대해 “서류를 내밀어도 지원 못 받는 아이들은 사각지대 빠지게 된다. 정부는 이를 어떻게 책임질 건지 그조차 제시 안 된 상태에서 학교와 학부모에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해에는 무상급식 중단을 앞두고 학교 자체적으로 사전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급식비를 낼 수 없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본 것인데 학생에게 직접 묻지 못하고 주변 환경을 탐문해 가정형편을 가늠해야 했다.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고 한다.

어떤 학교는 학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단다. 한 교사가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고 한 명씩 들어오게 해 직접 가정형편을 물었다는 것. 학교에서조차 일부에서는 학생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하물며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행정에서는 더 많은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부모 C씨는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무상급식이 이슈가 되면서 아이들이 ‘가난’을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가정형편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토로했다. C씨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까지 저소득층 지원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가난에 의한 창피함을 알게 됐다. 어른이 돼서도 가난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참 잔인하다고 했다. 행정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매우 많아 그 과정에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버렸다고 한다.

학부모 D씨는 서울 강남에서 왔다. D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산다는 강남도 아이들이 돈 안내고 밥을 먹는다. 무상급식 중단 사태는 급식비를 내고 못 내고의 문제를 넘어서서 왜 우리 아이들만 평등하게 밥 먹을 권리를 빼앗겨야 하는지 따져야 한다. 그 권리를 찾기 위해 엄마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라고 역설(力說)했다.

정영지 위원장은 “나라 지키는 군인한테 밥값 내라 할 수 있나. 그것처럼 우리도 아이들이 학교생활하면서 기본적인 권리를 찾아주고 싶다. 그런 차원에서 엄마들의 단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장승포초 비대위는 앞으로 활동에 등교 거부도 고려하고 있다. 현장학습으로 대체하고 수요조사를 통해 급식문제를 공론화할 계획이다. 또 비대위 결성에 관심을 보이는 다른 학교 학부모들을 만나 사례를 소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활동 보폭을 넓혀갈 것이라고 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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