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인간이 제일 싫어하는 괴로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적으로 허상을 실상으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첫째는 목마른 사람이 아지랑이를 연못으로 잘못 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목이 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들판을 헤매다가 멀리 연못이 있고, 그곳에서 김이 아련히 올라오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아지랑이인데도 갈증에 허덕이던 사슴의 눈에는 커다란 연못으로 보여 바쁘게 뛰어가는 것이다. 물을 마시기 위해 종일토록 뛰어가지만 끝내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죽어간다.

인간도 실상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평생 헛것만을 찾아 분주하게 허둥댄다. 그러다가 결국엔 하나의 소득도 없이 죽어간다.
둘째는 신기루를 본다는 것이다. 탐욕에 젖어있는 인간의 눈동자에는 허상들만 보이고, 또 그것들을 가지기를 꿈꾼다. 고대 궁궐을 지어 놓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오백년 살아보겠다는 그 기원이 바로 허공에 황금성을 건축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셋째는 꿈속에서 나타난 현상을 사실로 보고 탐착한다는 것이다.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현실과 같이 생생하게 나타나지만 깨고 나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인간은 이 삶 자체가 하나의 긴 꿈인지도 모르고 오직 잠 속의 단몽(短夢)만을 꿈이라 알고 있다. 이 인간의 장몽(長夢), 그 긴 꿈을 깨고 나면 바로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인간은 업연(業緣)에 의해 끊임없이 그 꿈을 반복해서 꾸고만 있으니 언제나 남의 삶만 살고 있는 것이다.

넷째는 그림 속의 높낮이와 같다고 하셨다. 원래 그림에는 높낮이가 없다. 붓의 테크닉으로 평면 위에 높고 낮은 명암을 칠해 놓았을 뿐인데도 인간의 눈에는 그것 자체가 사실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옛날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환장(幻匠)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스크린은 흰 천에 불과하지만 조각조각 찢어진 사진들을 연결시키면 착시 때문에 훌륭한 영화의 화면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 화면에 비쳐지고 있는 영상들을 보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따라서 울고 웃는다. 조작이 끝나면 너무나 싱거운 하얀 베 조각만 남는데도 말이다. 인생도 이와 같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인간들이 애써 고통을 만들어 내어 힘들게 괴로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눈병이 났을 때 허공에 꽃이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허공에 꽃은 사실 없다. 단지 눈병이 난 사람들에게는 허공의 꽃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처럼 인간들은 모두 다 혼탁해진 눈으로 허공의 꽃들을 보고 내 것이라고 빼앗으려 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에서 눈이 흐려지면 청정하고 미묘한 빛깔을 볼 수 없듯이 마음을 청정히 가지지 않으면 온갖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없다고 하셨다.

여섯째는 불바퀴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불로 된 바퀴는 없다. 횃불을 들고 빠르게 돌리면 먼 곳에서 그것을 볼 때 불바퀴가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으로 파생되어 일시 존재하는 허상들의 군상에 불과한데도 중생들은 거기에다 시비와 장단으로 논란을 갖다 붙인다.
일곱째는 물거품을 구슬로 착각하는 것이다. 비눗방울이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오색이 영롱한 구슬로 보인다. 그때 어른들은 실소를 한다. 그처럼 성인들의 견지에서 인간들의 탐욕을 보면 하나도 가치 없는 잡동사니들만 탐하고 있다. 보석이 아닌 것들을 진짜의 보석으로 알고 그것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일삼고 있다.

여덟째는 물속의 달그림자를 진짜의 달로 본다는 것이다. 달은 하늘에 있지 물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물속에 달이 있다고 한다. 실상과 허상은 이렇게 양면으로 갈라져 나타나고 있다. 실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허상은 빛깔 좋게 인간의 탐욕을 충동질한다. 그러다보니 술에 취해 물속에서 달을 건지고자 했던 이태백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아홉째는 거울 속의 얼굴과 같다고 하셨다. 거울엔 절대로 실체가 없다. 거울의 실체는 비어있다. 그곳에 투영된 사물들은 모두가 거짓이다. 그 곳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것은 모두 다 물체의 그림자처럼 실상의 영상에 그칠 뿐이다.

열 번째는 별이 파도에 비치는 현상과 같다고 하셨다. 햇빛이 잔잔한 파도에 쏟아지면 수 만개의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햇빛과 파도가 반조하여 만들어낸 이 현상 또한 실제가 아니다. 반조되는 인연들이 사라지면 파도는 물로 돌아가고 햇빛은 어둠으로 바뀐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이 반짝임이 실체의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권력이 있으면 으시됨과 거드름을 부리려고 한다.
열한 번째는 주문으로 물건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주문으로 어떤 물건이 움직이는 것은 주술의 힘이다. 그 작용에는 힘을 전달하는 끈이 없다. 주문의 기력이 교묘히 전달되다 보니 사람들은 물건이 움직이는 것만 볼 수 있다.

이렇듯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다. 허상에의 집착은 무지로부터 일어나고, 무지는 지혜의 부재를 말한다. 실상을 꿰뚫어보는 지혜가 있다면 세상은 온통 재미거리로 가득찰 것이다. 이 사바세계가 하나의 연극이고 놀이터다. 관전의 시간이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실제의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허상을 보고 그것을 잡으려고 서로 싸우고 있다. 거기서 고통이 일어난다. 그러다 아무것도 가지지도 못하고 자기 자신의 집까지 잃어버린다. 우리는 참된 실상을 찾아 실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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