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형.
우리들이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접했던 것이 동네 구멍가게였습니다. 그때의 구멍가게는 물건을 갖다 놓으면 팔리던 시대였지요. 소비자들은 태반(太半)이 단골손님이이었습니다. 그들의 표정(表情)을 읽어도 무슨 물건(物件)을 사러왔는지 알았던 세월이었지요. 참 다정(多情)했던 세월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 사는 맛이 강물처럼 흐르던 시절(時節)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네요.
더 엄밀히 따지면 오래전 아득한 옛날의 유목민(遊牧民)의 사회가 새롭게 노마디즘(Nomadism)적으로 재현(再現)되고 있습니다. 그 옛날 물과 식량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던 노마드(Nomad)가 21세기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은 지도 오래되었네요. “이미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라고 캐나다의 언어학자 마셜 맥루한이 지난 세기에 언급했지요.
지금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세상이네요. 그러니까 스마트(Smart) 세상인 것입니다.

ㅇ형.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편의점(便宜店)입니다. 70년대에 태어난 연쇄점(連鎖店), 서너평에서 10평 됨직한 구멍가게를 묶은 체인본부가 편의점의 전 단계였습니다. 60년대 말에 태동하여 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지요. 가장 많은 가맹점을 가졌던 본부가 희성산업, 삼양체인, 농심가였습니다. 이들 업체는 생필품과 라면을 본사에서 생산하여, 운영이 용이했습니다. 이때 같이 탄생한 것이 수퍼마켓이 있었습니다.

70년대는 연쇄점 천국이었습니다. 이러던 현상이 정보화의 물결로 소멸되었습니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1989년 편의점이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처음 이 업태의 명칭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미국에서 전래된 이 업태(業態)를 컨비니언스스토어(Convenience store)라고 부르다가 머리글자를 따서 CVS라고 하는 등 혼란스러워 하다가 편의점으로 그 이름이 통일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지요.
이 편의점도 태동 당시 약간의 혼란을 겪기도 했으나 이내 궤도에 진입했지요. 이는 시대가 요구하는 업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사람의 길, 장사의 길'/옥문석)

ㅇ형.
젊음과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업태였으니까요. 편의성에 가장 민감한 소비자에게 이야기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동문 안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순간적으로 온 몸을 바싹 말려주는 쾌적한 에어컨 바람의 그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편의점에서는 왠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불빛은 언제나 안도감을 준다. 우리 몸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먼 옛날 우리가 '안도감'이라는 낱말을 몰랐던 때조차.. 지금 한국 곳곳에 도시의 성좌처럼 편의점이 총총 들어서고 있다. 그것은 고대의 별자리가 그랬듯이 현대 인간에게 어떤 위치와 방향을 가리켜 주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주는 대수로운 영향들이나 별자리 운세가어떤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나는 그 쾌적함과 편리함을 좋아할 듯하다."
신세대 소설가 김애란의 편의점 단상입니다.

ㅇ형.
우리나라 편의점은 백령도, 저 멀리 마라도까지 있다고 합니다. 새거제신문의 지난해 8월 보도에 따르면 거제지역 편의점은 207곳으로 사실상 포화상태로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장소불문하고 깃발을 꽂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편의점 현상입니다. 현대판 만물상인 편의점에서 잠만 해결 못하지만 의식(衣食)이 해결된 지는 오래되었지요. 이와 더불어 우리 일상의 모든 문화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각종 수수료, 우편물, 세탁물, 택배, 은행업무, 보험판매, 충전업무, 해외탁송, 민원서류발급, 안전상비약품 판매, 휴대전화 및 디지털사진 인화, 와이파이존 구축, 국세수납, 복권판매 따위가 그것입니다.

편의점에 들어서면 알게 모르게 무장해제(武裝解除) 됩니다. 물건 값을 치르기 위해 신용카드를 내미는 순간 개인의 신상은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편의점은 젊은이의 해방공간이기도 합니다. 무개념의 일상을 추구하는 나홀로족, 관심을 배제하는 사람들의 공간인 것입니다.
구멍가게는 소통의 개념이 강했습니다. 편의점은 불통(不通)과 불간섭(不干涉)의 공간입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 인격적 대화는 강 건너 불빛입니다. 무관심의 배려가 팽만膨滿한 곳이기도 합니다.

ㅇ형.
편의점의 이러한 행태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갈지 궁금합니다. 효율성과 계산성, 예측 가능성, 통제성으로 대변되는 합리적 근대사회의 화신(化身) 앞에서 우리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버는 합리성의 말로(末路)가 비합리성에 있으며 현대문명의 종착지(終着地)는 '쇠우리'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학교 근처와 병원의 편의점은 인질사회의 극치입니다. 다른 일면에서는 몰개성(沒個性) 사회의 극치 같기도 합니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그의 저서 '편의점 사회학'에서 편의점에 점점 더 예속(隸屬)되고 중독될 것인가. 그것을 삶의 질 향상 및 도시 공동체 재건을 위해 선용(善用)할 것인가는 시민적 주권 회복과 유지에 달렸다고 하네요.
편의점의 무한 변신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 수없네요. 삼각깁밥이 고급도시락으로 변하듯이 그 효용 가치의 끝은.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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