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꽃이 핀다. 간간이 불어대는 꽃샘바람에도 흔들흔들 잘도 피어난다. 흔들리며 피는 꽃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신정, 구정명절을 지나 춘삼월(春三月)인즉 그럴 법도 할 것이다. 꽁꽁 언 땅에서도 싹을 틔우고 끝내 송이송이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그런즉 우리는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 앞에서 다시금 고개를 숙인다.

어김없이 봄소식이 들려오는 것처럼 올해도 새로운 출발선상에 오른 새내기들의 행진이 한창이다. 학교마다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열리면서 축사가 더해졌다. 그 중에서도 대학의 축사는 신입생들이 미성년이 아닌 성년(成年)이라는 점에서 귀가 솔깃해진다. 더욱이 그곳은 지성인의 요람이니만큼 판에 박힌 소리 따윈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S대학의 총장은 신입생들에게 “자신이 스스로 길을 모색하고 개척하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타인을 배려하라”는 말로 격려했다. 그러면서 지식과 스펙만을 위한 지식기술자가 아닌 진정한 지식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시대가 요구하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선한 인재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바늘구멍 같은 입시관문을 뚫고 입학한 신입생들이 종내 가야 할 길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길이라고 하니 말이다. 더욱이 대학의 상징이자 최고 지성의 표상인 총장의 메시지라는 점은 가히 희망적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스펙보다 인성(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임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된다면, 4년 등록금에 육박하는 비용을 들여 애써 쌓은 스펙을 취업하기 위해 한순간 포기하고야 마는, 소위 ‘스펙 디스카운트’가 만연할 리가 없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인턴경험, 봉사활동, 수상경력 등 소위 8대 스펙을 갖추지 않아도 취업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스펙보다 인성(人性) 즉 사람의 됨됨이, 직무수행능력, 열정 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대라는 의미이다.

장기불황의 여파로 이래저래 대학졸업자의 취업난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우리사회에 입학이 취업이고, 취업이 졸업이라는 등식은 애당초 성립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졸업학점을 이수하고서도 취직을 하지 못해 졸업 유예를 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졸업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졸업장만으로는 취업할 수 없는 터라 졸업의 의미 또한 퇴색된 지 오래다. 빛나는 졸업장이 빛바랜 졸업장으로 여기저기 남아도는 형국인 것이다.

‘대학 알리미’의 공시에 의하면, 지난 해 전국 대학교 평균 취업률은 54.8%로 전년도 대비 0.8% 낮아졌다. 2명 중 1명이 취업한 경우이니, 졸업생 절반가량은 백수가 되는 셈이다. 이른바 졸업유예생, 취업준비생으로 전락한 그들은 다시금 도서관에서 취업을 위한 불을 밝혀야 한다. 그런즉 졸업식장엔 빈자리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사회에 반쪽, 반 토막 졸업식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확인하기라도 하듯 지난 2월에 필자는 졸업생이 절반이나 빠진 졸업식에 축하객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씁쓸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검색하니, 자살뉴스가 화제로 떠올랐다. 과학영재들의 산실인 대전의 K 대학원생이 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가 전부인 줄 알았다”는 그는 유서(遺書) 한 장 달랑 남기고 갔다. 소위 엘리트코스만 밟아오던 한 젊은이가 좌절 끝에 보인 결론은 “세상이 싫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 모른다. 졸업식장에서 들려온 우울한 샹송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에 다시 봄이 왔다. 세상은 밝아지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서 있다. 흔들리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면서도 꽃이 피어나는 사유를 찾아야 한다. 자신을 위해 피어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없이는 한 잎도 피어날 수가 없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그것은 곧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점에서다.

그런즉 다시 또 출발선상에 선 새내기들이여! 누구에게나 공부가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러나 부단히 배우고 익혀야만 보이는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을 보는 안목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기나긴 터널 속에 서 좌절하고 또 좌절하는 가운데 새벽녘 동이 트듯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 만큼 세상은 아름답지 않겠는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이 경험하는 일을 즐겨야 한다. 영국의 시인 테니슨의 노래처럼 “우리는 자신이 경험해 온 모든 것의 일부이며, 모든 경험은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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