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허준을 보면 약초를 채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굵은 뿌리 부분만 대충 채취한 다른 사람과 달리, 가느다란 뿌리 끝까지 완전히 채취한 허준이 스승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대목이 있다. 약초에서 약이 되는 부위를 정확하게 채취하는 것은 한약이 좋은 효과를 내도록 하는 기초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가치이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한 만큼, 그 시절과 요즘 약초를 대하는 접근법이 동일하지는 않다. 예전에는 그저 정확한 약초를 잘 채취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러나 현대 한의학에서는 약재가 효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로운 물질들을 함유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즉 유효성과 더불어 안전성도 고려하는 것이다. 유효성분의 함유량, 중금속 및 회분과 같은 이물질의 함유량 등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정해서, 기준을 충족하는 약재들만 한의원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한의원에서 사용되는 약재는 모두 제약회사에서 절단, 세척, 건조, 수치가공, 포장 등의 제조 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제약회사에서는 한약재를 제조하기에 앞서 공인된 검사기관에 약재의 샘플을 보내어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 거제 지역만 해도 불과 20년 전까지 연초 등지에서 ‘복령’과 같은 약재를 채취해서 직접 한의원에 공급하는 이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도 간혹 간혹 재배하거나 채취한 약재를 공급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이를 간혹 만나게 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런 방식은 더 이상 한의원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의료기관용 한약재와 크게 구별되는 것이 식품용 한약재(식약공용한약재)이다. 실제로 황기, 구기자, 오가피, 갈근, 하수오 등은 처방 없이도 마트나 길거리에서 판매된다. 사슴농장에서 판매되는 녹용들도 마찬가지로 식품용이다. 이런 식품용 재료들은 제약회사의 검사와 품질관리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유효성분의 적정성과 유해성분의 함유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사실상 안전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종종 한약재의 안전과 관련된 부정적인 보도들이 나오는 것도 거의 이런 식품용 재료들 때문이다. 의료기관으로 공급되는 한약재는 식품용 한약재와 유통과정이 전혀 다르다.

한편, 올해 1월 1일부터 한약재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제도가 전면 의무화 되었다. 기존에는 제약회사에서 규격품으로 생산된 한약재만 한의원에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GMP 적합 승인을 받은’ 제약회사에서 생산된 한약재만 사용하는 것으로 더 강화된 것이다. 각 제약회사에서는 GMP 적합 승인을 받게 되면, 회사의 구조와 설비는 물론 원료구입부터 제품 출하까지의 모든 공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각 단계별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각 단계별 기준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세부 내용은 모두 문서화 되어 관리된다. 그만큼 품질 관리가 더욱 엄격해 지는 것이다.

일부 불량 한약재가 이슈가 될 때마다 덩달아 피해를 받아온 한의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해 오고 있다. 약 자체에 문제가 발생된 경우라면 일차적으로 제약회사가 책임을 지고,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감독관청에서 공동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다만, 식품 회사들은 한의사들의 노력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런 규제가 여전히 식품용 재료들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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