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형.
우리들은 신민(臣民)으로 태어나서 국민(國民)으로 헤엄치다 시민(市民)으로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궤적(軌跡)과 함께 하는 삶이네요. 70년의 세월, 참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세월이었지요. 태어나서 치음으로 맞닥뜨린 것이 6.25전쟁이었지요. 같은 겨레붙이 끼리 물고 뜯는 참 어처구니 없는 싸움이었지요. 이데올로기의 결정판이기도 했지요. 우리들이 태어난 거제는 전장(戰場)과는 먼 섬으로 전쟁(戰爭)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요. 공부하다 멀리서 대포(大砲) 소리가 울리면 책상 밑으로 기어들곤 했지요.

밀물처럼 밀려오는 피난민(避難民)으로 교실을 비워주고 묘지의 잔디밭에서 공부하곤 했지요. 그때 거제에 흥남철수로 도착한 1만4000여 명을 포함, 각지에서 몰려온 피난민이 10만이 훌쩍 넘었지요.
10만 가까운 거제도민과 합쳐 군(郡)의 역사상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지요. 이때의 현상은 파시(波市)가 따로 없었지요. 포로수용소(捕虜收容所) 유치(留置)로 머물게 된 UN군은 우리로 하여금 신기하게 보는 눈을 가지게 했지요. 백인과 흑인을 처음 보았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연초초등학교 앞에 가건물로 들어선 시장과 피난민의 집으로 새로운 시가지가 생겼지요. 이곳에서 우리들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도 했지요.

ㅇ형.
다음으로 접했던 것은 4.19와 5.16, 10.26, 12.12, 5.18, 6.10 민주항쟁을 겪으면서 우리들은 격랑의 파고(波高)를 구비구비 헤쳐왔지요. 참 끔찍한 세월이었지요. 그후의 사회현상(社會現象)도 그 변화가 질풍노도(疾風怒濤)였지요. 농경문화(農耕文化)의 느림에 익숙했던 우리들은 급작스런 변화 바람에 정신없이 내달렸지요. 섬마을에서 대처(大處: 부산)로 나와 공부하던 시절, 궁핍(窮乏)한 시절이라 ‘국제시장’에서 물들인 낡은 군복을 사입고 비를 후줄근히 맞다보면 온 몸에서 검정물이 줄줄 흐르곤 했지요. 혓바닥이 날름거리는 워커, 이 모두가 그 시대의 생활상이었지요.

국제시장은 파난민의 집합지였지요. 거제의 피난민이 일순 거의 빠져나와 국제시장으로 모여들었지요. 전쟁이 낳은 사생아처럼 국제시장은 그렇게 번창해갔고, 궁핍한 국민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했지요.
험난한 기아(飢餓)의 고개에서도 /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앞인데 / 그냥 추락(墜落)할 수는 없습니다 /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이어령: 소원시/所願詩)에서.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 마음이 이랬을 것입니다. 수많은 덕수들이...

ㅇ형.
60년대 끝자락에 배트남 전장터에 갔다가 70년초에 귀국, 부산 땅을 밟는 순간 깜짝 놀랬습니다. 갈 때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시나브로 변해가던 부산 시내가 일순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변화의 급물살을 탄 결과물이 나타나는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65년부터 시작된 파병과 이보다 앞선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해서 국부(國富)가 변해갔던 것입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가난한 나라 살림에 구비구비 눈물을 많이 보이기도 했지요. 사실 우리들 어릴 적에 몽창시리도 가난하지 않았습니까. 저 궁핍의 시대, 양지바른 곳에서 풀뿌리 캐서 먹던 일, 송곳대 껍질 먹던 일, 찔레나무순 따서 먹던 일, 쑥머무리가 밥이고, 고구마순과 무우가 밥이던 시절, 그때 태풍 사라호는 가난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지요. 밥알 한톨이 참으로 소중한 세월이었지요.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가 지천(至賤)으로 나래작산이지요.

우리 일상의 모든 것들이 너무 흔해서 아울렛(Oulet) 매장이 우후죽순(雨後竹荀)처럼 생기네요. 이것은 과잉생산(過剩生産)의 결과물이기도 하지요. 이는 이미 맬서스(T.R Malthus)나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공급과잉에 대해서 예측했던 현상이죠. 수요공급의 언밸런스는 환경문제가 뒤따르는 군요. 생산자나 수요자 쌍방간에 수요공급의 법칙을 잘 지키는 문제가 중요하지요. 답답한 현실이네요.

ㅇ형.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파편(破片)처럼 심중에 박혀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뽑혀 나오는 기분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들 윗세대들은 더 어려운 세월을 살아왔다는 얘기를 우리들은 수없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조선조 임란(壬亂)때는 인육(人肉)도 먹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징비록: 懲毖錄) 가난은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국제시장의 관객이 1000만 명을 훌쩍 넘기고 있는 현상은 공감(共感)의 흐름이겠지요. ‘공감의 시대(제레미 리프킨)’란 책이 수년전에 나와서 공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지요. 최근에는 황태연이 충서(忠恕)의 서에서 공감을 찾기도 하던군요. 우리가 살면서 공감의 소중함을 수시로 느끼는 것이죠. 논어 위정편에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옛것을 알고 새로운 지식을 터득하면 능히 스승이 될 수 있다)란 말이 있습니다.

옛과 새로움이 버무러져야 역사발전이 있는 것 아닌가요. 단절은 퇴행(退行)만 따를 뿐이죠.
국제시장, 이 영화가 좋고 나쁨 이전에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역사는 단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감이든 아니든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 흐름에서 공감을 건져올리는 것은 삶의 몫이겠지요. 삶은 전 세대나 후 세대나 그 흐름이 같을진대, 이해의 폭(幅)을 공감으로 승화(昇華)시키는 것이 행복이 아닌가요.

복고(復古)니 진보(進步)니 하면서 갈등의 골을 팔 것이 아니라 어깨동무라야 미래가 있는 것 아닐까요. 이 영화에다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바람에 관객은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이념의 불씨는 보이지 않던데, 그것을 발견하고 트윗을 날리는 사람의 역사인식은 무엇인지 참 궁금합니다. E.H.카는 “사회에서 분리된 개인은 언어도 정신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현상은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이야기가 언제까지나 매력적이 않다는 것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이랍니다

ㅇ형.
모처럼 우리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서(恕: 공감)의 자리가 마련됨이 다행입니다. 세대간의 장벽이 무너지고 진영논리, 이념의 장벽을 걷어내는 진정한 공감의 시대를 바라고 싶습니다. 어중잽이들이 날리는 트윗(tweet)이나 톡(talk)이 국제시장에서 팔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역사는 단절이 아니고 영속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건 받아들여야 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숙명적(宿命的)이 아닌지요. 어느 신문 논설위원은 국제시장 세대를 ‘만고생(萬苦生)’ 세대, 미생세대는 ‘생고생(生苦生)’ 세대라고 지칭했던데, 인생사라는 게 언제나 굴곡(屈曲)이 있는 것 아닌지요. 어느 세대건 그것을 슬기롭게 넘어야 하는 인생사 아닌가요. 이제 우리는 늙고 젊음의 문제, 이념의 증폭(增幅) 문제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이제 아무곳에나 분열과 갈등의 잣대를 들이대는 바보짓은 화(火)만 생산합니다. 노자는 무위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뜻의 ‘무위이 무불의(無爲而 無不爲)’를 말했다고 합니다. 세계를 남이 보는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대로 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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