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들의 활공은 자연의 걸작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착륙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질서가 장엄하고 신비롭다. 산맥과 대륙을 지나 대양을 건너가는 무명의 시공에 박모(薄暮)의 노을이 담길 경우 아름다움은 배가된다.

흩어진 지폐가 공중에서 날아다닐 때, 원경의 그것은 영락없는 새떼이다. 몇 해 전인가.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지 여의도. 14층 높이의 건물 옥상에서 약 오억 원 어치의 만원권 위폐가 공중에서 뿌려진 적이 있다. 한 방송사에서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고찰하기 위해 벌인 이벤트였다. 다큐를 위해 투입된 대규모의 엑스트라들과, 길을 지나던 시민들이 한데 어울려 돈을 줍느라 일대가 한 때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뭇가지에 걸린 것을 줍기 위해 둥치를 흔들어대고, 출입금지 구역 표지판을 못 본 척 하고, 앞 사람 두 발에 얹힌 돈을 나꿔채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열손가락으로 긁어모으고, 차에서 내려 허둥지둥 뛰어가고. 그 중 한 장의 지폐는, 두둥실 두둥실 기류를 따라 고도의 상공을 헤매고 다녔다. 마치 그 방송의 주제인양 ‘날 잡아 봐라’하고 인간을 조롱하거나 정착지를 몰라 안절부절 하는 모양새였다.

철새의 비행(飛行)에 돈의 비행(非行)을 감히 견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철새는 생존과 번식에 알맞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며 살아간다. 그 자체도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하지만 수천, 수 만 마리의 무리가 이동하는 노정은 과학의 힘 덕분이라고 한다. 유체역학적으로 볼 때 장거리 비행의 최적이라는 V자 대열이 바로 그것이다. 한 새가 다른 새의 날개 끝에서 날아가면 뒤의 새는 상승기류를 이용해 힘을 덜 들이고 날 수 있다는 것. 앞의 새로부터 받은 양력(위로 뜨는 힘)에 의해 중간 기착지나 공중 재급류 없이 목적지까지 무사히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 이 현상을 어찌 욕망의 기표로 정의되는 돈다발의 흩어짐에 비유하랴.
지폐는 뿌려지는 순간부터 무질서의 극치를 이룬다. 물질만능주의 속성을 그대로 대변하는 카오스적 상태로 나부낀다. 최소한의 질서도 없는 그 혼란의 세계는 온갖 망상이 꼬리를 물어 명상에 실패하는 내 복잡한 머릿속이거나, 험구와 이기로 파벌싸움만 하는 이 나라 정치 1번지이거나, 욕심에 갇힌 현대인의 실상에 다름 아니다.

새해벽두부터 ‘대구 돈다발’ 사건이 이슈가 되고 있다. 조부가 폐품수집을 해 마련한 800여만 원을 손자에게 주었고, 정신이 아픈 손자는 귀한 재산을 길바닥에 뿌렸다. 행인들의 주머니 속으로 지폐가 다 들어간 시각은 단 2분이었다. 경찰이 돈의 스토리를 파악하고 ‘환수 작업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얼마간의 돈이 주인에게로 돌아왔다고 한다.

따뜻함 보다 씁쓸함 쪽에 무게가 실리는 이 에피소드가 다음 설문조사의 결과를 반증하고 있다.
투명사회운동본부에서 최근 초·중·고교생 각각 2천 명을 대상으로 윤리의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우리 청소년들의 정직도와 물질위주 의식을 알아보려는 의도이다. 제시문은 ‘10억 원이 생긴다면 1년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탈세를 해도 괜찮다’ 등등이었다. 고등학생의 44%가 그렇게 할 용의가 있음을 나타냈다.(중학생은 28%, 초등학생 12%가 동일한 대답)

학생들의 응답을 바탕으로 '정직지수'를 산출한 결과 초등학생 85점, 중학생 75점, 고등학생 67점으로 학년이 높을수록 윤리의식도 낮아졌는데, 문항별로 보면 '남의 물건을 주워서 내가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초등학생 36%, 중학생 51%, 고등학생 62%였다. 심지어는 '부모님이 나를 잘 봐달라고 선생님께 촌지(선물)를 주는 것은 괜찮다'에 동의하는 초등학생 비율이 35%에 달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가 성적 위주로 학생을 교육·관리하다 보니 가정에서 올바른 도덕적 인격형성이 못 이뤄진 탓으로 보인다"는 관계자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흩어진 지폐가 순식간에 없어진 현상이 설문지 응답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청소년의 사고는 부모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날 누구 한 사람이라도 길거리에서 돈다발을 뿌리는 비상식적 청년의 행동에 관심 가진 어른은 없었고, 다만 돈 줍기에 혈안이 되었을 뿐이다.

새(鳥)나 사람이나 세계 혹은 운명과 독대하면서 개별적인 내면공간을 날고 있다. 그러나 두 존재가 삶을 나는 방법은 판이하다. 출발지에서 종착지까지의 날아가는 철새처럼 인생 또한 세월이라는 열차를 타고 귀숙처(죽음)를 향해 달린다. 여기까지는 동일성이다. 그러나 새는 인간처럼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지 않는다. 조류계의 평화가 그래서 유지된다.

인간사는 어떤가. 돈을 최고의 권좌에 앉힌 채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고 있다. 근자에 터진,세습된 부(富)가 빚은 땅콩회항 사태, 처자식을 죽인 강남 가장(家長), 이웃 가정을 몰살한 채권자 주부의 가치관이 바로 이를 입증하고 있다. “돌고 돌아 돈이라더냐 너도 돌고 나도 도는”(유행가 가사 ‘돈’) 때문에 그야말로 인생은 아수라장이다.

이 와중에 대구 거리에서 뿌려진 일부의 금액이 환수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연한 일인데도 엄청난 희소식 같다. 그 돈이야말로 철새의 V자 활공의 양력과 같다. 과반수 정도라고 주인을 찾아오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거액을 주면 감옥이라도 가겠다’는 청소년들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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