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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새 아침에 우리는강돈묵 /거제대 교수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자신의 소망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였다.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 긴 그림자를 끌며 두 손 모은 사람이 얼마였던가. 어린아이에서부터 백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새벽잠을 설치며 서둘렀다. 자신의 소망을 빌면 성취된다는 확신이 있었을까. 어쩌면 소망을 빌기 위해 나섰다기보다는 다가올 자신의 한해를 다짐하는 자리였다고 말함이 옳을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고, 이제는 자신에게 다가올 앞으로의 삶을 다짐하는 자리가 해맞이 자리였을 것이다.

새해 새 아침에 솟는 태양도 하루 전의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다만 하나의 매듭을 만들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다짐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때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실한 목표가 설정되어야 구체적인 다짐이 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해맞이 다짐은 실효가 없다. 구체적 준비가 없으니 다짐의 결심이 허공으로 날아갈 것은 뻔하다.

새해 들어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들에게 염치 불구하고 끼어들어 한 마디하고 싶다. 너무 작은 것에 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는 큰 꿈을 꾸자는 말을 하고 싶다. 세상 살기가 너무도 팍팍하여 그렇겠지만, 이런 때일수록 눈앞에 보이는 것에 너무 노예가 되지 말고 원대한 꿈을 가져보자는 말을 하고 싶다. 새 설계를 함에 가시적인 것을 추구함은 필연적이겠으나 그래도 미래에 대한 커다란 비전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비전에 의거한 작은 목표는 있을 수 있으나,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의 경우도 이럴진대 여럿이 모인 단체나 사회가 예외일 수 있겠는가. 정부도 그렇고, 지방행정부도 그렇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정책이 추진되어야 하겠다. 앞으로 추진해 나갈 목표지점을 원대하게 잡아놓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모든 힘을 한데 모아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목표가 확실해야 혼란이 없고 모든 힘이 한곳으로 모아져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미래 비전이 없이 단순 지향적 사업 추진은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이 원대한 비전의 설정에는 많은 것이 동원되어야 하겠지만, 그 중 가장 요구되는 것이 미래를 향한 ‘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꿈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오로지 눈앞의 소유에 마음이 멈춰 있어서 바라보기에도 민망하다. 지금의 다음이 무엇일까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피사체만이 그들을 사로잡을 뿐이고, 사고 역시 현재에 멈춰 있으니 발전의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여기에는 매스컴과 컴퓨터가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손가락으로 말하고, 손가락으로 행동하고 손가락으로 살아간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머리로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기계의 노예가 되어 손으로만 살아간다. 매스컴은 시각의 노예로 사람을 붙들어 놓고, 컴퓨터는 단순사고로 사람을 묶어놓는다. 창조의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좀 더 우리의 젊은이들이 창조적 꿈을 꿀 수 있도록 배려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교육의 현장에서 많이 실행되고 있는 ‘주문식 교육’도 한번쯤 되새겨볼 일이다. 산업체에서 보면 졸업과 동시에 학생들을 생산라인에 투입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것이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 기능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에 부딪친다. 단순 기술 습득에 매진하다보니 창조적 정신은 자연스레 상실하고 만다. 이런 교육은 무한의 가능성에 차단기를 내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도 인문이 살아나야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다. 현재의 생산성만 챙기다 보니 우리의 인문 교육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다.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 목표에 묶여서 창조적 미래에 대한 꿈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꿈은 인문교육이 이루어져야 가능하고, 우리의 사회 형태도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황금보다는 정신적 재화가 더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의 미래는 밝다.

을미년 새해에는 경제적 여유도 좋지만 정신적 풍요를 느낄 수 있는 꿈을 꾸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거제의 경제적 풍요가 이제는 정신적 풍요로 이어지는 꿈을 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 미래의 거제의 모습을 그려보는 비전도 있어야 한다. 해맞이를 하면서 이와 같은 꿈을 꾸어야 거제의 미래는 밝다. 거제의 예술 문화에 대한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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