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인간은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옷을 벗으면 다 똑같다.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 세상은 인간들에게 외양으로 하나를 주면 내면으로 하나를 빼앗아 가기에 결론적으로 모두가 똑같은 선상에서 평등하게 서 있다.

모두가 울면서 태어났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일을 이제 한 번 단단히 해보려고 악을 쓰며 태어났으나 모다 다 끝없는 불평 속에서 살아간다. 어차피 인간 세상에는 완벽하게 하나도 이뤄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또 잊고서 원망과 한숨으로 인생을 점철해간다.

중일아함경에서 부처님은 중생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하나도 성취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네 가지로 설명하셨다. “항상 젊게 살고 싶으나,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하셨고, 언제나 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싶으나 그것 또한 육신을 갖고 사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 하셨다. 그리고 원하는 것은 모두 다 갖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꿈에서 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죽고 싶지 않으나 반드시 죽어야만 하듯,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는 모두 다 신음하면서 쓸쓸히 죽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움켜쥔 것 없이 두 손을 펴고 간다. 이 시점에서 누가 이기고 졌는가? 아무도 결론적으로 이기고 진 사람이 없다. 어차피 인간은 성취하지도 못할 삶에 대해 무모한 도전을 어리석게 또 시작한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다 삶의 패배자로 이미 결론이 나 있었는데,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또한 평생 시간만 낭비해 버린다. 그러므로 잘난 것도 없는 사람들이 잘났다고 우쭐거릴 필요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사람이 못났다고 기죽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모두 다 업(業)의 사슬에 묶이어 있다. 감옥 속의 죄수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죄가 없으면 금방 풀려난다. 인간들은 모두 다 죄업의 창살에 갇혀 있다. 죄업이 없으면 인간은 생사를 초월하여 대자유인이 된다. 그것을 열반경에서는 해탈(解脫)이라고 한다. 그러나 죄업이 있는 한 인간은 모두 다 동일한 처지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 차라리 더 아름답다. 인간만이 옷을 겹겹이 입고 있지만 그 내면은 가장 음흉하고 추잡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옷은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고 덮어주는 것이지, 죄악에 시린 마음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적은 본질상 일부러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기적을 임의로 만들어 내는 것은 하나의 마술이고 환술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언제나 기적을 원한다. 뭔가 이상하고 괴팍한 것에 대해 대단한 호감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사이비 수행자는 기적을 행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혼을 빼앗는 최고의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가를 수행하는 이들이나 신선술을 익히는 도교들이나 모두 다 기적을 일으키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대단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전 생애를 걸고 거기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맑고 추운 겨울 하늘에 소나기를 오게 하는 것처럼 매우 부당한 일을 시도하려고 혼신의 정열을 다 바친다. 소나기는 가만히 있어도 여름이 되면 시시때때로 퍼부어 댈 것인데도 말이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신통 제일의 목련존자가 왜 불교의 첫 순교자가 되어야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현혹케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고 유치한 노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수행자는 세속인들이 평가해 주는 증명서와 명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철저히 수행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기중심을 자기 힘으로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군중들의 어깨를 누르고 자기중심을 잡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군중들과 같이 움직인다.

궤변과 희론을 앞세워 기이하고 괴상한 짓을 일부러 꾸며가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 사람들의 머릿수가 많아질 때 그들은 거기서 세력을 얻는다. 그래서 어설픈 수행자들에게는 언제나 미혹한 추종세력들이 붙어 다닌다. 진리를 탐구하는 수행자는 군중을 의식해서는 절대 안된다. 군중을 의식하면 위선과 거짓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 위선과 거짓이 그들을 묶어두는 동아줄이 된다.

그러므로 참다운 수행자는 군중의 시선을 인식하거나 그들의 관심을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할 일이지 수행자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다. 군중이 떠나면 일시에 무너지는 그 위상은 전혀 의미 없는 거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군중들이 만들어 준 자리는 너무 위험하고 내실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 자리를 굳히기 위해 우매한 군중들을 현혹해 끌어 모아서는 안된다.

원효스님도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신 것을 그분의 어록에서 볼 수 있다. “수행자는 재산을 사사롭게 축적해서는 안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일체중생들의 공유물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사유해서는 안된다. 세상의 이치는 너무나 공평해 하나를 소유하면 다른 하나를 내어놓게 되어 있다. 하나를 힘으로 뺏으면 또 하나를 분명히 힘으로 빼앗기게 되어 있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만큼의 원한을 받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에게 원한을 받고 있는 사람은, 그 인생이 절대로 아름답게 이어져 가질 못한다. 그러므로 재물을 축적하고자 하는 기력을 끌어모아 복덕을 쌓아가도록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
재물은 내가 힘이 없을 때 곧바로 탈취당하지만 복덕은 천하의 도둑도 감히 그것을 넘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등동물일수록 어둑한 창고에 그들의 재물을 숨겨두지만 고등성자는 채통 하나만을 가지고서도 온 천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바른 수행자는 금은보화 보기를 기와조각이나 돌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치와 호화스러움과 금고는 수행자가 소유할 것이 아니다.

진실한 수행 자체가 바로 어디에도 비길 바 없는 무기이며 다음을 위한 철저한 보험이 아니겠는가? 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모든 번뇌의 죄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수행자의 지고한 목적이다. 목적이 순수하지 않으면 그 방법 또한 졸렬할 수 밖에 없다. 수행자는 바른 수행 그 자체를 최고의 본업으로 여길 때, 전 중생계의 사표가 되고 그들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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