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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제277호- 학동 진석중 가옥일제 말 남해안 도서지방 상류층 주거문화의 특징 엿볼 수 있는 근대 주택

진석중 가옥

등록문화재는 기존 문화재 지정제도를 보완하고 문화재 보호방법을 다양화해 위기에 처한 근대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등록 기준은 근대사의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되고 가치가 널리 알려진 것, 기술 발전이나 예술적 사조 등 그 시대를 반영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 등이다.

거제지역 등록 문화재 1호는 지난 2006년 지정된 진석중 가옥(陳石中 家屋)이다.

진석중 가옥은 제4대 국회의원을 지낸 진석중 씨가 지은 주택으로 1947년에 통영에 거주하는 목수에게 의뢰해 신축했다고 한다.

지난 8일 가옥을 관리하고 있는 진선률 씨를 만나 진석중 가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진 씨는 가옥의 실소유자인 진석중 씨의 둘째아들인 진태환 씨와 인척(6촌)이다.

진 씨는 “이 집(진석중 가옥)이 학의 날개 밑에 만들어진 명당터라 그런지 자손 중 박사만 7명이 났다”는 말을 시작으로 가옥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 학동마을은 풍수지리학상 학이 알을 품은 형국인 비학포란지형(飛鶴抱卵之形)으로 학동 몽돌해변의 몽돌이 학의 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 씨에 따르면 진석중 가옥은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 그러던 중 한 대학교수가 휴가차 인근 펜션에 머물다 진석중 가옥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알리면서부터 등록문화재 절차를 밟았다.

안채와 별채, 창고, 대문 등 4개 건물 등 약 220평 남짓한 규모의 진석중 가옥은 1940년대 말 경남 남해안 도서지방 상류층의 주거 특징과 변화상을 살펴 볼 수 있는 근대기 주택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알려졌다.

안채의 마루 상부 종도리 밑면에 상량문이 남아 있는데 상량문에 <檀紀四千二百八十年丁亥三月十五日甲申巳時上樑>라는 문구로 미뤄 1947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진 씨의 설명으론 실제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상량식을 하기 전 일제 시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진석중 가옥은 한옥과 일본식 주택의 특징이 잘 조화돼 있다.

해방 전 짓기 시작해 해방 이후 만든 진석중 가옥은 동서로 긴 사다리꼴 대지에 안채(본채), 별채(건너채), 창고(광채), 대문 등이 ‘튼 ㅁ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대문이 인근 건축물의 신축 과정에서 쓸모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대문과 연결된 부분에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진석중 가옥의 통로는 대문 오른편 사랑채 인근에 위치해 있다.

진석중 가옥은 안채의 벽장과 창호, 별채의 욕실과 화장실 등이 한식과 일본식 가옥의 특징이 섞여 있는데, 육지 건물과 달리 습기를 막기 위해 높은 건축구조와 대청 아래 통풍 시설을 만들었다.

진석중 가옥에선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아닌 일본식 가옥의 구조를 엿 볼 수 있다. 특히 사랑채의 경우 복도와 화장실 및 욕실이 만들어 졌고, 지금은 보수된 안방 문도 일본식 문의 구조가 돋보였다고 한다.

또 진석중 가옥을 자세히 살펴보면 몽돌로 유명한 지역답게 건축물 곳곳에 자갈 대신 작은 몽돌을 이용한 벽돌과 시멘트를 이용해 지은 흔적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중간에 있는 일본식 장독대도 인근 학동몽돌해수욕장에서 가져온 몽돌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진석중은 누구?

제4대 국회의원을 지낸 진석중 씨는 1912년 7월 29일 동부면 학동리 320번지에서 진치주와 옥임년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석중 씨의 아버지인 진치주 씨는 학동에서 양조장(막걸리)을 경영했는데 당시 양조장 운영은 호황을 누려 진석중 씨는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어릴 때 마을 훈장에게 한문을 배우던 진석중 씨는 거제보통학교(현 거제초등학교)에 입학해 1926년 3월 학교를 졸업하고 밀양농잠학교에 진학한다.

밀양농잠학교를 졸업한 진석중 씨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통영군 산림계에 근무하다 통영군 지방기수(현 과장급)까지 승진했지만, 다시 사직서를 내고 가업인 양조장과 어장(정치망)을 시작한다.

정치망 사업을 하던 중에는 통영군수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히 학동 연담 간 도로개설은 당시 통영군수가 진석중 씨의 숙원사업을 들어 주면서 시작됐고, 훗날 진석중 씨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사람들의 인심은 얻은 진석중 씨는 초대 경남 도의원에 당선됐고 2대 도의원에는 무투표로 당선돼 경남도의회 의장이 됐다.

이후 1958년 5월 2일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진석중 씨는 국회상공 분과위원장으로 상공인들에게 맞는 상공법 수정을 주장해 왔고,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엉망진창이 된 거제를 복구하기 위해 방파제와 제방신축 등을 위해 노력했다.

진석중 씨는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생을 마감했다. 학동고개에서 학동을 바라보는 길 위쪽에는 동부면민이 세웠다는 ‘진석중사적기념비’가 있다.

참고자료- <동부면지>, <거제시지>, <문화재청 홈페이지>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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