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림마을 미륵당

죽림 미륵당 벅수(법수法首)

경상도 해안 지역과 전라도에서는 장승을 벅수, 벅슈, 벅시 등으로 부른다. 이는 법수(法首) 또는 법슈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확실치 않다. ‘법수’의 의미를 ‘신선’ 또는 ‘선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벅수는 할아버지, 할머니, 당산, 하루방, 천하대장군, 수살, 돌미륵, 신장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나무나 돌로 다듬어 사람 모양의 형상물(形象物)을 마을이나 절의 들머리 또는 고개 등지에 세웠던 일종의 수호신인 벅수는 예부터 조상들이 신령한 존재로 여기며 제사를 지내거나 치성을 드리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광주박물관에서 발간한 ‘벅수 信仰 現地調?(신앙 현지조사·1985년)’ 등에는 거제지역에는 일운면 망치리, 거제 삼거리, 양정리, 하청면 어온리에 벅수가 있으며, 정월 1일이나 15일, 또는 섣달그믐 벅수제를 지냈다고 기록돼 있지만, 현재는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제지역에 확인되는 벅수는 거제면 죽림마을 미륵당(彌勒堂)에 있는 돌벅수다.

당집 안의 벅수를 ‘할매미륵’이라고 부르는데 죽림마을 미륵당에 벅수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할매미륵은 바다를 등진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생김새는 소박하면서도 투박하다. 머리 부분은 그나마 그런대로 모습을 갖췄지만, 목 아래로는 팔과 다리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원래 미륵당은 기와로 만든 사당이었지만, 1970년대 허물어져 마을 청년회에서 시멘트로 다시 만들었다.
미륵당 앞바다에 바닷물이 빠지면 북쪽 편에 머리가 없이 누워 있는 또 다른 벅수를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 미륵당(彌勒堂)에 있는 돌벅수

주민의 말로는 지난 2003년경 통영문화원에서 미륵당 앞 옛 부둣가 터 바다에서 또 다른 벅수로 추정되는 돌을 발견했지만, 이후 인양작업은 없었단다. 미륵당 벅수가 바라보는 곳이다.

벅수는 제주도의 돌하르방이나 다른 지역의 장승과 달리 민간신앙의 기능 외에 또 다른 기능이 있었다.
조선 시대 수군이 배를 묶어 두는 계선주(선박 접안 시 계류용 밧줄을 걸기 위한 기둥)의 역할과 야간에 염탐하는 적에게 보초처럼 보이기 위한 기능이다.

조선 시대 죽림마을에는 어해정(禦海亭)을 설치해 전함과 수군을 주둔시키고 수군 운영에 필요한 기구 및 병기와 식량 등을 보관했던 곳이다. 따라서 죽림마을 돌벅수는 민간신앙의 역할 외에 조선 시대 군함을 묶었던 계선주의 역할을 했던 벅수일 가능성이 크다.

전남 여수에도 죽림마을 벅수와 같이 바닷가에 계선주 역할을 한 벅수가 있는데, 거북선이 제작된 여천선소 유적에서 발견된 6기의 벅수가 그것이다.

▲죽림마을 포구, 어해정(禦海亭)이 설치됐던 곳으로 '할배 벅수'가 수장돼 있다고 한다.

할매미륵과 거제의 김만덕 ‘곤발네 할매’

죽림마을 미륵당 벅수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120여 년 전 불우이웃돕기로 마을의 빈곤한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킨 ‘대숲개 곤발네 할머니’ 이야기다.

죽림 마을은 ‘대숲개’라고 불리는데, 대숲개라는 지명은 죽림마을 항구가 내간덕 들판과 거제만을 대나무 삼태기에 감싸듯 한 지형을 하고 있어 지형에 따라 지명이 붙었다는 이야기와 말 그대로 마을 뒤편 대나무 숲의 지명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곤발네 할머니의 곤은 빈곤할 곤(困)에 발은 허술한 옷 발(?) 또는 초가집 발(?)이라고 전하는데 이는 마을사람들이 할머니를 부르는 별칭으로 70평생을 작은 오두막 초가에서 검소하고 외롭게 살다간 할머니의 삶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곤발네 할머니의 일생은 1794년 가을 제주도에 태풍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재산을 풀어 굶어 죽는 제주도민을 살려낸 거상 김만덕의 삶과 닮았다.

곤발네는 젊어서 남편을 잃고 자식 없이 오두막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밭일과 고기잡이 뒷일, 그리고 바느질해서 받은 품삯을 차곡차곡 저축했다.

세월이 흘러 칠십이 넘은 곤발네는 모아둔 돈으로 밭을 사 수수와 조를 심었는데 마침 그해 흉년이 들어 굶는 사람이 많았다. 1885년 고종 22년의 일이다.

큰 흉년에 어른들은 칡을 캐고 해초를 뜯어 힘들게 살아갔지만, 아이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던 터라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곤발네는 밭에서 수확한 수수와 조로 밤새 몰래 엿을 만들기 시작한다.

▲죽림마을 입구 표지석 뒷면에 기록한 '곤발네 할매' 설화

곤발네 할머니는 엿을 아이들에게만 먹일 생각으로 깨끗이 씻은 오줌통에 엿을 넣어 담장 밑 뒷간 옆에 숨겨 두고, 어른들이 일을 나간 사이에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굶주림에 허덕이고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엿을 나눠줬다.

그리고 엿을 받은 아이들에게 엿을 얻어먹었다는 이야기는 비밀로 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엿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굶주린 어른들이 찾아와서 아이들이 먹을 엿을 나누어 달라고 할 것을 염려해서다.

대숲개 할머니의 선행은 이듬해 봄나물을 뜯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됐다. 훗날 곤발네 할머니의 이야기는 오히려 아이들을 타이르는 말로 바뀌었는데 마을 부녀자들이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고 게으르고 먹기만 하며 “너는 대숲게 곤발네 할머니 집으로 가거라. 가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오줌통에 담아 놓은 엿을 줄 테니까” 하면 아이들은 엿을 먹고 싶지만, 오줌통이란 말에 비위가 상해 “싫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곰발네 할머니는 매일 같이 치성을 드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그곳이 바로 죽림마을 미륵당의 돌벅수라고 전하며 마을사람들은 이 돌벅수를 ‘할매미륵’이라 부른다.

참고자료 - <광주박물관, 벅수 信仰 現地調?(신앙 현지조사)>, <전국문화유적총람>, <벅수와 장승>, <거제시지>, <거제향토문화사>, <거제도농촌표본조사>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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