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I ♡ GEOJE
거제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 곳 - 수월산성지(水月山城止)거제현의 이동과 환도의 역사 현장, 전원주택 건설로 최근 사라진 문화유적

최근 거제지역 역사에 있어 소중한 문화재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지정문화재라는 이유로 사라진 이 문화재는 고려 시대 거창지역으로 이주했던 거제도민(巨濟島民)이 거제현의 복구로 고향에 돌아와 처음 정착한 치소(治所)였던 수월산성지(水月山城止)다.

비록 지방문화재에 조차 등록되지 못할 만큼 초라한 규모에 훼손이 심한 상태였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문지와 평면 원형의 석축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형태 파악이 가능한 상태였다.

▲옛 수월산성 서쪽 성곽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정책은 지정문화재의 관리와 보존에만 힘쓰는 모양새다. 하지만 지정 문화재도 원래는 비지정문화재 였다가 개인 또는 집단의 노력과 관심으로 그중요성을 인정받아 지정문화재가 된 것이다.

따라서 비지정문화재도 지정문화재만큼 관심을 기울여 관리하고 보존해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일 찾은 수월산성터는 인근 전원주택 단지의 신축공사로 대부분 흔적이 없어진 상태였다.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해 보이는 대목이다.

수월산성터를 찾기 위해 동행한 향토사학자 이승철 씨는 사라진 역사의 현장을 보면서 “문화재를 복구하고 관리하는 일보다 시급한 문제는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수월산성 지적도

수월산성지(水月山城止)

수월산성은 수양동 수월마을 뒤편 구릉지에 있었던 석축성으로 수월회관에서 돌산교회 방향으로 올라가면 위치한 전원단지 터에 있었고, 거제지역에 만들어진 성곽유적 중 가장 작은 규모의 성이었다.

체성의 둘레는 67.5m, 높이 2m, 폭 1.8m 정도의 체성의 형태를 확인하기 힘들지만 인근 전원주택 단지의 신축공사로 사라지기 전까지 평면 원형의 석축이 남아 있어 조선 시대 성곽유적임을 알 수 있었다.

▲훼손 되기 전 수월산성

성곽의 구조는 남쪽 능선 아래 체성을 개구한 개거식(開据式-성문 개구부의 상부가 개방된 형태) 문지로 내외벽 면석은 대석을 이용해 쌓았고 체성은 주변의 막돌을 이용해 내·외벽을 겉쌓기하고 속에 잡석을 채워 넣었다.

수월산성은 고려말 거창과 산청 등 서부 경남(진주, 산청, 거창) 지역으로 피난 갔던 거제도민이 1422년(세종 4년)에 환도하면서 수월리에 목책을 설치할 당시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1995년 동아대 박물관의 <거제시 성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성지에는 문지를 비롯해 주변에 목책을 둘렀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유일하게 남은 수월산성 잔존 유적

거제도민의 거창현 이주와 환도(還島)

기록에 따르면 거제현은 고려말 폐현되고 거창현의 속현인 가조현으로 이동하게 된다. 군현의 이동은 치소는 물론 백성까지 옮겨가는 역사적 사건이다.

거제도에 다시 거제현이 설치된 시기는 1422년(세종 4년)으로 거제현의 복구 이후 여러 차례 치소 이동과 함께 한 역사는 거제 역사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려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리서엔 거제현의 연혁을 소개하면서 고려 원종 12년(1271년) 거제현이 거창현의 속현 가조현으로 이동하는 시기라고 소개하고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거제현의 이동 시기를 고려 원종 대 또는 고려 말에 옮겼다고 기록 돼 있다.

각종 지리서에는 거제현이 거창현의 속현인 가조현으로 이동하게 된 배경을 ‘왜구의 침입’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학계에선 거제현의 이동 배경이 왜구의 침입이 아닌 삼별초의 남해안 장악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거창군 속현 가조현조에 거제현의 이동을 ‘원종 때 삼별초의 난을 피해 가조현으로 치소를 옮기고 거제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데다 원종 12년(1271년)은 물론 충정왕 2년(1350년) 이전까지 왜구(倭寇)의 거제 침입 사실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수월산성 성벽

공민왕 때부터 고려 말까지 경상도 지역엔 113회 정도의 왜구 침입이 있었는데 대부분 밀양, 울주, 김해, 동래, 합포 등이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을 받았고 거제는 4회 정도의 왜구 침입을 받은 기록이 있다.

반면 거제현이 거창현의 속현인 가조현으로 이동하기 1년 전 삼별초는 원나라에 복속해 개경으로 환도(還都)한 고려정부에 반기를 들어 봉기했고, 거제현의 가조현 이동 후 1년 뒤에는 거제에서 전함 3척이 불타고 거제현령까지 붙잡았다는 기록은 거제현의 이동이 삼별초의 항쟁 때문이라는 의견에 설득력을 더한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조선 조정은 1419년(세종 1년)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고 1422년부터 수월 지역에 목책을 쌓고 치소를 정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1426년 사등 지역에 관아를 옮기고 성을 쌓았다가 다시 1451년 고정부곡(현재 고현동 일대)에 읍성(고현성)을 쌓는다.

현재 수월산성지(水月山城止)는 흔적조차 묘연한 상태지만, 거제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됐던 소중한 문화유적이었다.

참고문헌 - <2009 거제 폐왕성과 동아시아의 고대성곽>, <신현읍지>, <거제시지>, 동아대 박물관 <거제시 성지 조사보고서>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대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