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가 피고 밤을 새워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느낄 수 있다. 내일쯤에는 가을비도 온단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일진데, 이 밤이 가을이라서 어찌할 것인가? 가을밤이라고 핑계 삼아 쉽게 잠자기가 아까워서 늦은 밤에 홀로 차를 마시면서 청승스럽게 감정의 사치를 누려본다. 감성적인 발라드 가수의 애절한 가을노래를 들어보다가는 따라서 불러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감성에 기대어 투정을 부려보는 것이다. 지겨워질 수도 있을 정도로 길어진 밤인데도, 제법 재미가 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쫓아 망상을 피우는 재미에 내일의 일상이 조금도 걱정이 되질 않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을을 타는 감성중독에 걸린 것 같다. 조금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러다가 심심해져 갈 즈음에 그동안 챙겨 보지 못했던 책도 꺼내어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근세 한국불교의 큰 어른이셨던 구하당 천보 대종사의 ‘취산문집(鷲山文集)’을 펼쳐 보았다. ‘山居偶吟(산거우음 - 산에서 우연히 읊다)’ 이라는 선시(禪詩) 중에서 칠언사율(七言四律)을 몇 번을 읽고도 또 읽었었다. ‘存時開見先師偈(재시개견선사게 - 때때로 先師들의 게송을 펼쳐 읽다보면) 無事頓忘古聖年(무사돈망고성년 - 일이 없어 옛 성인의 나이마저 모두 잊네) 得妙尋眞皆別念(득묘심진개별념 - 妙를 얻고 眞을 찾음 모두 별난 생각이니) 飢來則食困來眠(기래즉식곤래면 - 배고프면 밥을 찾고 노곤하면 잘 뿐)’라고 선사(禪師)의 게송(偈頌)은 상당히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이다.

선사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뜻’으로 받아 새긴다. 사람들은 어떠한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이성(理性)적으로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감성(感性)적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하고 갈등하게 된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게 되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부드럽게 해결되어지고 별 탈이 없다.

그러나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거나 대립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들은 상처를 입고 어두워지거나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미칠 것 같은 좌절감과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때로는 정신적 공황이 생겨나서, 편견을 갖게 되어 삐뚤어진 이기심을 갖게도 한다. 또한 그런 삐뚤어진 이기심은 반목과 분열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배척과 불신이 난무하여, 우리의 삶을 질식시킬 만큼 크나큰 고통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이성과 감성은 우리 뇌 안에서 마주보고 있다.

이성은 머리에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하게하고, 감성은 가슴에서 감각적인 판단하게 한다. 이성과 감성은 그 무엇이 지배하거나 이기고 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 무엇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성과 감성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억지로 분리할 수 없는 인간의 인식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단순히 감성적이다거나 이성적이다라고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거나 표현해서도 안 된다. 완벽한 이성도 없고, 완벽한 감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감성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활동을 권장하고 강요하듯이 강조한다. 그래서 사회적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으로만 풀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런 모순된 현실세계에서 현대인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성(自然性)인 내면의 감성은 억제당하여 뻣뻣해지고, 권위주의와 형식주의에 집착하는 기능적인 인간으로 길들여져 간다. 울고 싶어도 맘껏 울지 못하고, 웃고 싶어도 제대로 웃지 못하는 무감각한 존재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라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역할을 하고, 박제되어 영혼이 없는 허깨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가끔은 이성적인 행동이 쌓은 반작용(反作用)의 에너지들이 ‘광기(狂氣)’로 나타내는 충격적인 경우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더 이상의 불행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갖춘 살아있는 영혼이 필요하다. 행복한 영혼을 위해서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중도적인 관점에서 이성적 통찰이 이루어지고, 그 지성의 기초로 훈련된 감성적 이해가 필요하다. 융합하는 영혼을 가질려는 끊임없는 자기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道融群品能柔石(도융군품능유석: 융화의 도는 능히 돌도 부드럽게 만든다.)’

이 세상의 세월도 필히 호흡 사이에 있나니, 이 가을에는 추억할 일들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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