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I ♡ GEOJE
성곽의 박물관 거제의 대표 산성 - 둔덕기성(屯德岐城)‘상사리’ 명문기와 등 거제지역 군·현 치소지 반증 유물 출토

거제는 성곽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축성기법과 시대를 아우르는 성곽이 존재한다. 거제 어느 지역을 찾아도 성곽 유적 없는 곳이 드물 정도다.

성곽은 선조들이 외침을 대비했던 역사와 더불어 지역의 정체성을 대변한 공간이었지만, 최근에는 구시대의 건축물 정도로만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성곽은 보통 주변 조망이 좋은 곳에 위치한 탓에 최근 성곽을 역사 체험 현장과 시민쉼터로 찾는 사람이 많다.

특히 성 둘레를 걷고 성 마루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는 일은 성곽은 물론 성곽에 얽힌 역사와 더 친숙해지는 방법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거제지역 20여 곳 성곽의 대표격인 둔덕기성(屯德岐城)은 최근 방문객이 늘고 있다. 지난 2010년 8월 24일 국가지정문화재(사적509호)로 지정되면서 학계는 물론 많은 사람이 기성에 관심을 두고 있는 탓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둔덕기성은 ‘고려 18대 의종(재위 1146~1170년)’에 얽힌 유배지 이미지와 ‘폐왕성’ 등 비교적 어두운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그러나 둔덕기성은 동아시아 지역의 성곽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는 물론 거제지역의 역사와 정체성 대변하는 문화유산으로 어두운 역사보단 거제의 영광이 서린 곳이다.

학계에선 둔덕기성이 멀게는 독로국 시절부터 거제지역의 관방·치소·유배지 등의 중요한 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형 문루를 갖춘 현문식 문지구조(門址構造)와 체성(體城)의 축조 수법이 타 산성에 비해 정연하고, 집수지의 규모가 비교적 크기 때문이다.

또 둔덕기성에서 발견된 인화문토기, ‘상사리(裳四里)’ 명문기와, 청자접시 등 다양한 유물의 발견은 둔덕기성이 신라 문무왕대 설치된 상군(裳郡) 및 경덕왕대 거제군의 치소성(治所城)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 하고 있다.

둔덕기성과 폐왕성

꽤 오랜 세월 동안 둔덕기성은 ‘폐왕성’으로 불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전 어느 기록을 찾아봐도 둔덕기성이 ‘폐왕성’이란 명칭으로 쓰인 적은 없다.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32권 거제현 고적조를 시작으로 1656 간행된 <동국여지지> 권 4하 거제현 고적조, 1757년-1765년 간행된 <여지도서> 경상도 김해진관거제부 고적조를 비롯해 신증동국여지승람 간행시기 이후 조선 시대 모든 지리서에는 둔덕기성으로 표기됐다.

흔히 의종 유폐지로 전해져 불려 온 ‘폐왕성’이란 명칭은 1934년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통영군지’에 처음 언급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폐왕성’이란 명칭은 이보다 앞선 1931년 간행된 ‘경남의 성지(慶南の 城址)’에서 찾을 수 있다. 경상남도 지역의 주요 성곽과 성지를 임진왜란 전후로 나눠 설명한 이 책자에는 둔덕기성을 고려 의종이 거제에 유배와 쌓은 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통영군 오량리에 피왕성(避王城)이 있다는 간략한 소개도 있는데 이는 아마도 오량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둔덕기성은 지난 1999년부터 여러 차례 발굴·조사 작업을 거쳐 축성 연대가 7세기 신라시대 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의종이 축성을 했다는 기록은 일제에 의한 잘못된 기록이다.

그렇다면 둔덕기성은 언제부터 기성으로 불려졌을까?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 나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에선 거제지역을 총칭하는 별호 기성이 소개돼 있을 뿐 성곽으로의 기성에 대한 기록은 없다.


기성의 문지와 집수지

둔덕기성은 지난 2004년 동쪽 체성과 동문지, 2007년 집수지, 2009년 동문지 및 건물지의 시·발굴 조사를 통해 7세기 신라시대 초축되고 고려시대 전기 수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동문지의 경우 상당히 웅대한 규모로 추정되고 있으며, 초축과 수축된 성벽 등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아시아고대성곽의 축성법 변화를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문에는 정문(正門), 간문(間門), 암문(暗門), 수문(水門)이 있다. 성문의 수는 성곽의 규모, 축성 목적, 지형 등 제반 여건에 따라 정해졌다. 성문의 형식에는 개거식(開据式), 평거식(平据式), 홍예식(虹霓式), 현문식(懸門式)이 있다.
둔덕기성은 동문지를 비롯한 나머지 남문지와 서문지가 모두 현문식 성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문식 성문은 다락문이라고도 하며 온달산성이나 삼년산성·아차산성·대모산성·충주산성, 그리고 거제지역의 다대산성 등 7세기에서 8세기 축성된 신라성에서 볼 수 있는 성문이다.

현문식 성문은 입구가 높은 곳에 위치해 방어 위주의 농성전에 유리한 성문이다.

아직 복원되지 않은 둔덕기성의 체성은 허물어져 돌무더기 상태로 남아있지만, 일부 체성은 복원돼 있다.

복원된 체성과 원래 성벽의 형태를 자세히 보면 원래 체성 부분은 배흘림기둥과 같이 약간 튀어 나온 듯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는 성벽을 오르는 적군이 쉽게 오르지 못하게 만든 고대 성곽의 축성기법으로 알려졌다.

둔덕기성의 남동쪽에는 지난 2007년 복원·발굴한 집수터인 연지가 있다. 연지의 규모는 지름 16.2m, 깊이 3.7m에 달해 16만 6000ℓ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 집수시설이다.

원형의 단면 계단식으로 북쪽은 4단, 동·서·남쪽은 3단으로 축을 쌓았는데 집수지도 성곽의 초축, 수축 연대와 함께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발굴 당시에 뻘층에서 토기와 청자접시, 기와, 청동그릇 파편 그리고 화살촉, 구유, 멍에, 괭이, 나무망치, 소뼈 등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 수백 점이 발굴됐다.

또 연지 바닥층에 찾은 청자상감입문매병은 12세기 중후반의 유물로 의종의 유배와 관련된 성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대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