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시황 시절 불로초를 찾아 동쪽으로 바닷길을 떠났다는 서복(徐福)의 발자취를 찾는 연구가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관심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하다. 사실 서복은 아주 오래전의 인물로 그의 행적도 전설에 가깝지만 그가 잠시 스쳐간 장소마다 숱한 설화와 지명과 문화를 만들고 있다. 그것들은 역사적 고증이나 진위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스토리텔링의 원형 내지는 문화 관광자원으로서의 다양한 가치를 지닌다. 거제의 와현이라는 지명과 태풍에 유실되었다는 해금강의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석각도 그 중의 하나이다.

화제를 거제로 돌려 보면 먼저 고려 의종과 둔덕기성(폐왕성)이 떠오르고 이어 정서와 정과정곡이 뒤를 따른다. 의종은 고려 18대 왕으로 무신란 때 거제도 둔덕기성에서 약 3년간 유폐되어 기거를 했던 역사상의 인물이며, 정서는 의종이 거제로 유배를 보낸 신하이자 의종의 이모부이다. 한 나라의 왕이 왕궁을 벗어나 무려 3년씩이나 기거를 하였고, 폐왕성이라고 알려진 둔덕기성이라는 거주지가 실재하며, 더불어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효시라 일컫는 정과정곡이 창작되었다는 곳이 우리 거제시로, 어디에 견주어도 뒤질 바 없는 훌륭한 문화역사적 자산을 지닌 곳이다.

이러한 자산과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품안에 두고 있으면서도 이를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에는 그동안 너무 소극적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삼촌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귀양지인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 단종과 생ㆍ사육신 등의 역사 인물과 관련하여 각종 문화행사와 관광산업을 활발하게 펼치는 지자체를 보면서 그간 다소 부럽고 안타까웠던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거제시청에서 유배길 조성관련 조사보고가 있었다. 둔덕 오량역을 출발점으로 해서 거림리를 중간기점으로 거제면 쪽과 고현 문동까지 크게 세 갈래 답사코스를 만들고, 거림에는 유배문학관 내지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것이 요체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부터 제주도와 남해, 진도 등지에서 유배를 테마로 하는 각종 사업이 이루어져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유명세를 타는 곳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거제시에서도 유배를 테마로 하는 문화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단순하게 기존지역의 벤치마킹 혹은 흉내내기 정도로 치부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먼저 선택과 집중을 들고 싶다.
단순히 유배길 답사코스 몇 개에다 중간에 휴식공간을 적당히 만들고, 유배문학관에는 유배문인들의 숫자와 문학작품의 수를 대수인양 늘어놓아서는 결코 세인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어낼 수 없다. 여타 지역과의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의 인물과 역사적 사실이 가진 기왕의 지명도를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의종과 둔덕기성, 정서와 정과정곡이 제격으로 보인다.

의종은 고려 제18대왕으로 무신정변으로 폐위되어 거제도에서 무려 3년간 기거를 하였던 왕으로서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무게와 비중을 지닌 인물이다. 그리고 정서는 의종에 의하여 귀양살이에 처해졌으면서도 의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노래한 선비이자, 국문학사에도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정과정곡은 정서가 의종에 의하여 동래에서 7년여, 거제에서 약 13년간의 귀양살이를 하는 가운에 지었다는 작품으로 가사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 창작지에 대하여는 동래설과 거제설이 있으나 부산지역을 연고와 기반으로 하는 학자들과 동래정씨 문중들의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고, 딱히 거제설을 주창하는 학자들이 미미하였던 까닭에 그럭저럭 동래설로 굳어졌을 따름이다.

이번 기회에 거제창작설로 학계 등지에 담론이나 화두를 던져 정과정곡에 대한 불씨를 지필 필요성이 있다. 창작지에 대한 논거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제설을 주장하여 세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면 소기의 성과로 족하고, 이후는 학계와 여론이 거제로 향하도록 노력하면 될 일이다.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다음은 둔덕기성의 접근성이다. 추석을 맞아 성묘가 한창이다. 그런데 차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소에는 후손들이 도로변에서 산소를 향해 술잔을 따르고 되돌아간다는 얘기가 있다.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교통여건이 불편하면 유적지나 관광지 어느 곳 없이 찾기를 꺼려하는 게 현실이다. 적어도 단체 관람객을 태운 버스가 왕래를 할 수 있어야만 학생들이며 노약자들이 찾을 수 있다.

좀 더 욕심을 내면 둔덕기성을 성지(城址)상태로만 둘 것이 아니라 의종과 많은 신료들이 기거했던 건축물과 부대시설을 복원하여 소왕성(小王城)의 형태로 조성한다면 볼거리가 제공되는 역사현장의 테마관광의 현장이 될 것이다.

다음은 유배기념관의 규모다. 용역보고서에 나타난 유배기념관의 규모가 작고 협소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앞서 언급한 의종과 무신란, 의종과 정서의 만남, 정서와 정과정곡 등을 중심으로 하여, 우암 송시열을 비롯한 많은 거제 유배문인들의 수많은 작품을 전시하고, 체험공간 등을 마련하려면 그에 맞는 규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산이 관건인데 예산 또한 분산이 아니라 집중적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의종과 정서에 얽힌 이야기 중 의종에 의하여 거제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정서와 폐위되어 거제도로 내려 온 의종이 오량역 근처에서 약 한 달 정도를 지냈고, 그 사이에 두 사람이 필시 만났으리라는 고전연구가 고영화 선생의 주장이다. 두 사람 모두 만감과 소회가 교차하였을 듯싶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예술작품의 소재가 될 법하다. 아울러 오랜 각고의 노력 끝에 얼마 전 발간된 거제유배총서가 일반시민들에게도 속히 배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어서 수 년 전부터 거제무용협회에서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의종폐왕무’라는 창작무용 공연을 해오고 있는데 이를 유배컨텐츠 예술브랜드로 지정하여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 조성되는 유형의 하드웨어 기반 위에 무형의 예술공연 소프트웨어를 가미하여 시너지효과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 내용을 보면 제1막 의종과 무신란, 제2막 정서와 정과정곡, 제3막 의종과 정서의 슬픈 만남, 제4막 마고할미와 천재단의 기원, 제5막 유배추모비나리 등 역사적 사실 및 정과정곡의 거제창작설을 토대로 스토리텔링 형식을 가미한 창작무용극으로 작품성과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거제가 지닌 소중한 자산인 유배문화에 대한 오랜 연구가 모두의 관심과 열정으로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
거제유배문학이 거제의 상징인 바다와 배를 무대로 하는 거제선상문학, 한국문단의 거목 청마유치환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청마문학, 한국전쟁의 상흔인 거제도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문학 등과 더불어 거제지역을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브랜드로서 전국적인 자리매김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족일진대, 역사기록에 근거한다는 ‘둔덕기성’이라는 협소하고 낯선 이름보다는 옛 어른들로부터 익히 들어온 ’폐왕성‘ 내지는 ’피왕성‘이란 이름이, 유폐된 의종의 아픔과 더 닿아있는 듯, 친근하고 좀 더 큰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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