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는 라틴어)’이라는 명언을 남긴 그가 정작 그 자신은 ‘현재’를 떠난 것이다. 그것이 생의 최고의 선물임에도 이를 거부하고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비보(悲報)에 필자는 그의 대표작 <죽은 시인의 사회>(1989)를 떠올린다.

그가 남긴 명대사와 명장면은 자연스럽게 회자(膾炙)되면서 ‘현재를 즐겨라’는 화두와 함께 ‘이제 넌 자유야’라는 굿바이 메시지를 남기게 한다. 더욱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전통과 규율을 중시하는 학교의 희생물이 된 그가 교실을 떠나던 날,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하며 그를 부르는 제자들을 바라보던 그의 표정연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제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내면의 소리에 가만가만 귀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진정한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그런즉 우리는 이를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를 영화 속의 주인공 존 키팅 선생과 동일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키팅선생’은 허구이고 ‘로빈 윌리엄스’가 실제라는 사실 또한 그를 사랑하는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 인생 37년은 이러한 사유를 뒷받침한다. 그는 우리에게 ‘키팅 선생’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사, 가정부, 의사, 군인, 로봇, 왁스 모형, 램프의 요정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캐릭터로 존재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는 은발의 가정부 할머니였고, ‘굿 윌 헌팅’에서는 정신과 의사였다. 또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에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왁스모형이었고,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로봇이었으니, 그야말로 그는 전천후(全天候) 인간형이었다.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연극임을 입증하듯 그의 인생은 오로지 ‘연기 인생’이었다. 따라서 그가 출연한 영화를 즐기며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우리는 그가 사랑한 ‘현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신을 지탱하던 ‘현재’를 어이없이 놓아버렸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을 암시하던 그였다. 그로부터 우리는 ‘현재를 즐겨라(극복하라)’는 화두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 살아있는 화두를 갖게 한 그는 분명 희망적이었다. 불행하게도 지금 이 순간, 오늘, 현재, 우리는 그를 만날 수가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현재를 떠나 과거로의 회귀를 한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현재’를 어이없이 놓아버리고 영원한 침묵의 굴레로 돌아섰다.

돌이켜보니, 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제자들에게 삶의 방법론을 제시한 진정한 멘토(mentor)였다. 때로는 발상의 전환을 위해 시집의 서문(序文)를 찢게 하는 등 제자들에게 획일화된 의식을 벗어나게 했다. 더욱이 그들 자신이 한 편의 시(詩)라고 하면서 진정한 자유는 그들 자신의 꿈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라 일러주었다.

누군가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한 삶은 그들의 것이 아님도 환기시켰다. 그러면서 그들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될 때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가상세계에서의 조언에 불과할지라도 그는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다. 실제보다 가상공간에서 더 치열하게 살았던 그는 현실을 넘어선 또 다른 현실에서의 삶을 추구한 것이다.

저마다 그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때, 그는 그 자신은 물론, 여러 사람의 인생을 두루 연기하며 살았다. 그런 만큼 가중되는 삶의 무게는 그 자신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냉혹한 이 현실의 공간을 가상공간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뒤바뀐 채 살아야 했었던 가상공간에서의 죽음은 때로는 그의 삶의 연장선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계선상에서 그는 죽음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인간의 유한성은 ‘죽음’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 만큼 오늘로 이어지는 ‘삶’이 더없이 소중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이 순간, 필자는 “현재를 즐겨라”는 화두를 남긴 그를 추모하는 글을 씀으로써 ‘현재(오늘)’를 만끽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잃은 아픔을 ‘그’를 통해 극복하고 있다.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으라 하지 않았던가.

그는 죽었다. 그러나 ‘오 캡틴, 마이 캡틴’으로 불리는 ‘그’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다. 진정한 캡틴이자 영원한 캡틴인 ‘그’는 오늘 이 순간 우리가 살아있음으로써 만날 수 있다.

그런즉 우리는 100년 전 학교 선배들이 남긴 사진과, 오늘 그가 남긴 영정사진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소리,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 그것만이 살 길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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